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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욤비 - 한국에서 난민으로 살아가기
욤비 토나.박진숙 지음 / 이후 / 2013년 1월
평점 :
< 내 이름은 욤비 > 한국에서 난민으로 살아가기.
한국에도 난민이 있었던가...? 하면서 이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얼마나 무지한지 깨달았습니다.
한국에도 난민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생각보다 많이.
그리고 내가 알고 있던 난민의 의미와 실제의 난민은 달랐습니다.
무척이나 절박한 상황의 그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역시 알게 되었습니다.
2013년 법 개정으로 조금 달라진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들이 넘어야 할 고비는 너무너무 많았습니다.
욤비 토나(YIOMBI THONA)는 1967년 10월 15일, 콩고민주공화국 반둔두 주 키토나라는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다.배고플 땐 나무 열매를 따 먹고 외로울 땐 동물들 뒤를 쫓으며 그게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살았다. 대학을 가는 게 특권인 나라에서 킨샤사 국립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콩고비밀정보국(ANR)에서 일했다. 2002년, 정보국 작전을 수행하다가 조셉 카빌라 정권의 비리를 알아채고 이 정보를 최대 야당인 《민주사회진보연합》에 전달하려다 발각돼 체포됐다. 국가 기밀 유출죄로 비밀 감옥에 수감돼 갖은 옥고를 치르다가 구사일생으로 탈출해 한국에 들어왔고 난민 신청을 했다. 5년 동안 인쇄 공장, 사료 공장, 직물 공장을 전전하며 일했다. 탈장으로 쓰러지고, 팔이 기계에 끼이고, 숱하게 월급을 떼였다. 운 좋게 국내 난민 지원 단체에서 활동가로 일하게 돼 공장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난민 신청을 했지만 불허 처분을 받았고, 이의 신청을 했지만 기각됐다. 결국 행정 소송까지 가서 겨우 난민으로 인정을 받았다. 한국에 온 지 6년 만의 일이었다. 그때서야 오두막에서 피난민처럼 살아가던 가족들을 한국에 불러올 수 있었다. 너무 어렸을 때 헤어진 아이들은 아빠 얼굴도 기억하지 못했다. 성공회대학교 아시아비정부기구학 석사 과정을 졸업했다. 지금은 인천에 있는 《UIC시카고병원》에서 일을 한다. 틈틈이 한국 사회에 있는 국제 난민 문제와 콩고 문제를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최근에는 《아시아태평양 난민권리네트워크(APRN)》 국제회의에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 ‘어드바이저’로 선출됐다. 얼마 전, 막내 딸 아스트리드가 한국 땅에서 태어났다.
- 책 표지에
짧게 말하면, 그의 지금까지의 인생여정이 위와 같겠지만, 국내에서의 삶은 저렇게 압축하기에 부족합니다.
올해 인간극장, 여유만만에 욤비 토나씨가 출연했었다고 합니다.
(저는 몰랐지만...)
그런데, 인터넷의 글들을 읽어보다가 아직도 일부는 그를 조롱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난민으로 인정받아서 한국에서의 삶을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그는 편견의 벽을 모두 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그가 한국에서의 삶이 힘든 이유는, 난민이어서가 아니라 인종차별때문인것 같아 더 마음이 씁쓸했습니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것 만으로 차별받아야 하는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