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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 바쁜 일상에 치여 놓치고 있었던, 그러나 참으로 소중한 것들 46
정희재 지음 / 걷는나무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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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번뇌 많은 여인이 스승에게 물었다.
"맞벌이를 10년이나 했는데도 아직 집을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내 집을 마련하고 안정된 동년배들을 보면 자괴감도 들고 시기심도 듭니다."
스승이 답했다.
"청빈과 극빈의 차이가 무엇인지 압니까? 스스로 그 길을 택해 검소하게 살면 청빈입니다. 극빈은 내 욕망은 그렇지 않은데 할 수 없어서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돈에 대한 조급함에 사로잡히면 반드시 실수를 하게 됩니다. 당장 다음 끼니를 걱정할 만큼 가난하거나 큰 병에 걸렸거나 문맹이 아니라면, 그 이상은 더 잘먹고, 더 건강하고, 더 많이 가지고 싶은 욕심 때문에 괴로운 것입니다. 남과 비교해 얻는 고통은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습니다. 약이 없습니다. 이것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악한 생각입니다."
p.111
< 도시에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라는 책은 시골에서의 삶을 살다 도시에서 살아가다 세계 각국의 도시를 횡단하며 여러가지를 느끼고 사색하는 정희재 작가의 책입니다.
도시의 삶을 이야기 하고 있는 책이 분명한데...뭔가 신기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도시에서 느껴지는 목가적인 분위기.
"도시에서 사는 너 힘들지? 그렇지만 힘을 내. 언젠간 좋은 일이 생길거야. 암.. 노력하는 대로 얻어지는 거잖아." 라고 말하는 그런 힐링? 그런 것이 아니라 읽다보면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가슴속에 들어오면서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촉촉하게.. 그렇게 마음을 적셔주는 것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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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도시에 살 때는 저랬었어..
그렇지만, 그게 싫었던 것은 아니야..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는 것이니까. 라는 생각을 하며 읽을 수 있었던 책입니다.
잔잔한데, 억지스럽지 않고, 촉촉하지만 슬프지 않고, 외롭지만 붙잡아주는 이들이 있는 그런.
그런 삶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삶을 통해 내 삶을 다시 볼 수 있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나를 행복하게 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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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이면 그 추운 날씨에 서울에 온 그들이 안쓰러웠지만,
위층에서 난방을 한 덕분에 그 온기가 내 천장을 덥힌 거였다.
그동안 그토록 추웠던건 그들의 부재도 한 몫했음을 그제야 알았다.
원래 추운 집이 아니라 그들이 없었기에 더 추웠던 거였다.
눈물겨웠다.
인간은 함께 어울려 체온을 나누며 사랑야 한다고,
도시가스가, 난방이 알려주다니.
그리고 미안해졌다.
내가 집을 비운 겨울에 아래층 사람들은 얼마나 추웠을까.
우리는 얼굴도 모르면서 벽을 사이에 두고
도시가 공급해 주는 화력으로 서로를 덥혀 그 겨울의 한기를 견뎠다.
p.181
사랑도 이와 같다. 애당초 손바닥은 깨물기 좋게 생기지 않았다. 내 손바닥도 깨물지 못하거늘 상대의 손바닥이야 말해 뭣하랴. 전쟁같은 사랑이 지난 뒤에야 손바닥과 손바닥은 서로 마주 잡기 좋게 생겼다는 걸 깨닫는다.
p. 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