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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드 44 ㅣ 뫼비우스 서재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1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1930년 대 우크라이나 대 기근( 기근이라고 쓰고 대 학살이라고 읽으면 맞습니다)을 배경으로 이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먼저 이 책을 이해하려면,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대충이라도 알고 있어야 할 듯합니다
1930년 대.. 당시 히틀러는 우크라이나의 비옥한 곡창지대에 사는 농부들이 재배한 농작물을 외국으로 수출해 외화를 벌고, 자영농의 전통이 강한 이곳을 집단농장으로 만드는 계획을 강행하고 있었지요. 그러나, 예상밖으로 농민들은 강하게 저항합니다. 그러자, 스탈린은 군인들을 동원해서 농민들의 종자 씨앗까지 몰수하고, 우크라이나를 외부와 격리시켜 주민들을 아사시킨다는 끔찍한 정책을 폈습니다. 그리하여 이들은 자연재해가 아닌 인간으로 인한 기근의 지옥에 빠지게 되지요. 흙도 씹고, 나무껍질도 씹고... 먹을수 있는 것, 먹을 수 없는 것까지.. 그러니까 신발까지 먹기에 이르렀는데요. 그렇다면 인육은 먹지 않았겠습니까...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몸부림을 쳤으니까요.
이 우크라이나 대 기근 때 주인잃은 비루먹은 고양이 한마리를 잡겠다고 덫을 놓는 형과 동생. 둘은 고양이를 포획하는데 성공하지만, 땔깜을 주워온 동생이 형에게 달려왔을때 발견한 것은 하얀 눈 위에 떨어진 붉은 핏자국 뿐이었습니다. 형제의 엄마는 형이 죽었다며 오열했습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아들을 먹으려고 잡아갔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고양이를 사냥하러 나섰던 어린 형 - 열살남짓한 - 은 도리어 사냥되어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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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20년 후. 모스크바에서 이야기는 다시 시작됩니다.
소련의 국가 안보부 MGB (KGB의 전신)요원 레오 스테파노비치 데미도프의 부하 표도르 안드레예프의 어린 아들인 채 다섯살도 되지 않은 아카디가 끔찍한 모습으로 살해당합니다.
입안에는 흙이 가득 차 있었고, 발목에는 끈이 묶여있었고, 옷은 하나도 걸치지 않았으며 복부는 난자당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수사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범죄란 존재하지 않는다] 는 사회였으니까요.
아카디는 살해당한 것이 아니라, 끔찍한 열차사고를 당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범죄가 있을 수 없는 소련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살해가 아니라 사고로 죽은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억지로 사건은 종결되었고, 아버지인 표도르 역시 억지로 그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고, 레오 역시 보고서를 읽고 일반적인 - 조작된 보고서였지만 - 사고라고 생각하고 사건을 처리합니다.
아주 평화롭고 살기좋고 서로가 공동체 생활을 하며 모두가 평등하게 잘 사는 나라인 소련에서 범죄따위가 일어날 리 없지요. 그런것은 서방세계에서 보낸 스파이가 보낸 짓이거나, 범죄자가 있다는 헛소문을 퍼트리는 반사회분자의 짓이거나... 그러니, 반사회분자나, 스파이를 잡아내서 죽이면 될 일입니다.
평범한 수의사가 반사회분자로 몰려서 고문을 당하며 자신도 모르게 술술 불게되는 동물병원 고객 명단이 반사회분자, 스파이 명단으로 둔갑하여 연쇄적으로 숙청을 당하게 되고 마는 그런 사회였습니다. 선생님이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을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이름이 언젠간 자기를 죽이고 말 족쇄처럼 여겨지고, 제발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그런사회 말이죠.
레오는 MGB 요원으로서 잘 나가고 있었지만, MGB라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말 한마디 잘못하거나, 행동을 조금만 의심스럽게 보이거나한다면 언제고 트집잡혀 숙청당할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결국 그런날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레오의 아내 라이사가 스파이 혐의로 몰리게 되고 만 것이죠.
레오는 아내를 감싸게 되고 둘은 지방으로 좌천되고 맙니다. 사실 사형감이지만, 레오의 상관이 자신의 체면도 생각하여 지방으로 보내게 된 것인데요.
여기서 레오는 다시 사건을 만나게 됩니다.
금발 여자아이의 살해사건.
그 여자아이는 나체였으며, 입안에는 흙이, 발목에는 끈이, 복부는 난자당해 처참한 모습이었습니다. 게다가 특이한 점은 위장이 없다는것. 범인이 위장을 잘라갔습니다.
레오는 아주 먼 거리에서 발생한.. 그러니까 모스크바에서 발생했던 사건과 이 사건이 동일한 범인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수사를 합니다. 그리고, 또 한 구의 시체를 발견합니다.
범죄가 일어나지 않는 곳에서 말이지요.
그러나, 이것은 시작일뿐.
소련 전역에서 발견된 어린아이의 시신은 모두 44구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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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1970년대 말에서 1990년대까지 대략 10년 동안 소련에서 무려 52명의 여성과 아이들을 살해한 안드레이 치카틸로의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습니다. 그 안드레이 치카틸로의 사건을 1950년으로 이동시켜서 스탈린 치하의 경찰국가가 자아내는 공포로 서로가 감시하며 두려워 하던 그 시기를 소설의 배경으로 택했지요. 물론 안드레이 치카틸로의 범행동기와 이 소설의 범인의 범행동기는 다릅니다.
작가는 스탈린의 공포 정치와 대기근이 빚어낸 참극 속에서 벌어지는 추악하고 끔찍한 연쇄 살인마를 추적하는 과정을 그려내고 싶었다고 합니다. 공산주의가 붕괴되기 직전인 1980년대의 상대적으로 느슨한 사회 분위기 보다는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당하는 사람들의 일상을 통해 공포가 극대화 된 1950년대의 소련을 그리고 싶었던 것이죠.
책을 읽다보면, 스릴러 이상의 무언가를 느낄수 있게 됩니다.
그 무언가.. 라는 것은 각자의 몫으로 책을 덮고나면 더욱 진하게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