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들의 마음공부 : 부모 편 - 부모에게 받은 상처에서 벗어나 생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한
오소희 지음 / 수오서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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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부모에게 전혀 상처받지 않고 - 혹은 성장하면서 그들을 이해하게 되었다면 그런 사실만으로도 큰 축복을 받은 게 아닐까 합니다. 물론, 이건 상처받은 내면의 아이를 끄집어내어 쓰담쓰담 하지 못하는 저의 부러움입니다. 부모의 행동이나 모진 말, 혹은 무관심 등으로 아팠던 사람이라면 <언니들의 마음공부: 부모 편>을 만나보아도 좋겠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상처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힘듦은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오래전 <독이 되는 부모>라는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저는 그들에게 부족한 자식이라고만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독서를 통해 나쁜 건 내가 아니고 오히려 그들이었다는 결론을 내었습니다.



부모에게 불만이 있는 상황과는 조금 다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생애와 현재의 삶까지 포함하여 어릴 적의 경험 혹은 무경험은 늘 저를 피폐하게 만들었습니다. 한순간도 떳떳하게 서 본 적이 없습니다. 이건 끊어내기를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년 동안 아니 수십 년 동안 책을 읽어오면서 좋지 않은 관계는 과감하게 끊어내고 내 인생을 살아야 함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늘 관계의 단절이란 그렇게 쉽지 않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 도돌이표 같은 삶을 살며 스스로에게 답답함을 느낍니다.



말도 안 되는 비난을 받으며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하기까지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말끔히 관계를 정리했다고 생각했었지만 동명 이인만 보아도 화들짝 놀래는 나,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성인 남성의 중저음을 들으면 긴장하는 나는, 아직까지 어린아이입니다.



<언니들의 마음공부>에서는 모든 관계를 파악하고 벗어나기 위해서는 '나'를 먼저 보라고 합니다. 지금 여기에 우뚝 서있는 자신의 모습을 거울을 통해 보는 게 아니라 먼 우주에서 내려다보며 객관화하는 겁니다. 이건 제법 쓸모 있습니다. 저는 화가 날 때, 어린 - 지금은 어리지 않지만 - 자식에게 화가 났을 때 자신을 바라볼 때 유용합니다.



그런데 어렸을 때 받았던 상처들 - 그리고 이어지고 있는 아픔들을 돌아보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저 끌어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좋은 가이드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멀리에서 내려다보면 볼수록 하염없이 슬퍼지기만 한데, 사람들은 이를 통해 치유를 얻었습니다.



좋은 말로 다독이면서 치유되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알아보고 미처 말하지 못했던 부분, 깨닫지 못했던 일들에 대해 선을 긋는 방식으로 회복합니다.



1단계로 대면과 이해를 합니다. 자신이 짊어져 왔던 것들에 대해서 그리고 겪어야 했던 일들 그 사이에서 어떤 위치였는지, 왜 그래야만 했었던 건지를 멀리서 내려다보며 파악합니다. 2단계로 위로와 긍정을 합니다. 스스로를 안아주는 마음으로 이제는 성인이 된 자신이 어린 자신을 감싸 안는 그 이상의 효과를 느낍니다.



마지막으로 퉁치기와 경계 설정을 합니다. 이 부분이 상당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행해도 되는 한계. 그게 바로 선이니까요. 부모라는 이름으로 침범해왔던 영역이지만 결코 내어줄 수 없는 스페이스라는 게 있는 법입니다. 그것만은 절대로 양보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그어놓은 선이지만 언젠가는 무너지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실제 인물들이 에세이를 써가며 나름대로의 아픔을 체계적으로 다스려갑니다. 함께하는 사람들이 사연을 듣고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보며 그들 역시 마음을 얻어 갑니다.



이들이 겪은 일들을 모두 조각조각 파편처럼 안고 있는 나는 이 책을 통해서 힐링했다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단계를 밟아야 한다는 건 배웠습니다. 내 마음속에 있는 어린아이는 나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딸이 안아준다고 했으니 저는 그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딸을 안아줍니다.



멀리서 나를 바라보며 그런 일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다독입니다. 저의 상처는 여전합니다. 아직도 밤마다 새로운 집을 찾아다니거나 겨우 이사를 갔는데 비가 온다거나 세상이 멸망하는 꿈을 꿉니다. 그래도 언젠가는 깊이 새겨진 상처를 이겨내고 우울의 늪에서도 헤엄쳐 나와 꿋꿋하게 살아가리라 믿습니다. 전, 밝은 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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