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뱀파이어는 생각보다 빠르게 달린다>는 충청도의 한 농가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웃지 못할 소동을 그리는 소설입니다. 충청도 하면 '느리다'와 '특유의 유머 코드'가 생각나는데요, 이 소설에서는 느리기는커녕 엄청나게 빠르고 활발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독특한 블랙 유머는 이 책을 그대로 관통하고 있어 즐거움을 더합니다.
어디서 이 책을 읽으면 좋을까 즐거운 고민을 하다가 지하철에서 읽어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비교적 얇고 가벼운 책이라서 휴대성이 좋으니 언제 어디서곤 함께 하기 좋습니다. 그게 바로 이 출판사에서 내놓는 고블씬북의 특징이 아닌가 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아무래도 책을 읽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 하더라도 두께에 부담스러워 포기하기 쉬운데 그런 부분을 고려한 듯한 출간 방식은 꽤 즐겁습니다. 내용도 지나치게 무겁지 않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기 좋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재미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무언가 한 가지를 탁 던져주는 게 매력적입니다.
<충청도 뱀파이어는 생각보다 빠르게 달린다>를 읽는 동안에는 즐거운 기분으로 쉴 새 없이 페이지를 넘겼지만, 말단에 있는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는 주책맞게 코끝이 시큰해졌습니다. 지하철이 아니었다면 눈물을 찍었을지도 모르겠다 싶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이가 나를 버린 것 같아도,
아니 실제로 버렸더라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가 한 명만 있다면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p.128 작가의 말
가장 위험하거나 힘든 순간, 정신을 차리면 늘 처음 만나는 사람은 상일이라는 친구였습니다. 어째서 그가 왜 눈앞에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는 '나'를 발견하고 살아가도록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뭐 뜨거운 브로맨스라거나 아니면 슈퍼 히어로라서 '나'를 챙겼던 건 아닙니다. 살뜰하게 돌보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렇게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게 바로 친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 그러니까 영길은 친구인 상일과 함께 농촌에서 살고 있습니다. 지독한 입 냄새를 풍기는 유전성 질환 혹은 특성 때문에 어릴 때부터 놀림을 당하고 친구를 사귈 수도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과 함께 자동차 사고를 당하고 부모님을 잃고 맙니다.
그 후 유일한 혈육이자 소문난 깡패였던 외삼촌이 그를 데리고 가지만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대면서 영길에게 자신의 길을 가라고 합니다. 자신에게 유난히 가혹한 세상을 저주하던 어느 날 상일과 재회하고 모처럼 성실하게 농사를 지으면서 살아가는데 뜻하지 않은 사건이 발생합니다.
유럽발 전염병이 발생했다는 뉴스가 보도되는데 그 여파가 이 시골구석까지 미치고 만 것입니다. 갑자기 상일이 영길의 입 냄새가 좋다면서 달려들어 피를 빨지를 않나, 동네가 흉흉합니다. 알고 보니 루마니아에서 발견된 뱀파이어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퍼져버렸던 건데요, 영길과 상일은 지금부터 어떻게 되는 걸까요?
소설은 짜임새가 무척 좋습니다. 표지가 스포일러인가 싶을 정도로 각종 정보가 촘촘히 들어있는데요, 한 가지 힌트를 더 주자면, 메인을 차지하고 있는 청년 회장은 영길도, 상일도 아닙니다. 청년 회장이죠. 하지만 표지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등장하고 있는 만큼 참 잘 그렸다 싶습니다.
<충청도 뱀파이어는 생각보다 빠르게 달린다>는 더 이상 살아갈 힘을 갖지 못한 사람에게 '친구'란 어떤 의미가 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소설입니다. 언뜻 블랙코미디 SF 소설의 모양새를 취하고 있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삶의 철학은 상당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