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 선택적 함구증을 가졌던 쌍둥이 자매의 작은 기록들
윤여진.윤여주 지음 / 수오서재 / 2022년 6월
평점 :
남들에게는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는 어린 시절이라고 하더라도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못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저 역시 어린 시절은 거의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 어쩌면 기억을 닫아놓은 것일지도 모르겠는데 - 빨간 필름이 끼어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나날들이었거든요.
이 에세이를 쓴 쌍둥이 자매 윤여진과 윤여주는 초등학교 5,6학년 때까지 선택적 함구증을 겪었습니다. 어째서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되었는지는 책에서 명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선택적 함구증이라는 용어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니 자매가 집 밖으로만 나가면 아무런 말도 못 하는 것에 대한 원인을 파악한 사람도 없었거니와 지금의 본인들도 알 수 없는 노릇일 테지요. 하지만 어떤 상황에 이르르면 더욱 말을 할 수 없게 되는지, 그리고 어떤 기분인지는 또렷이 잘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아이가 이런 심정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녀석은 말을 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되도록 하지 않으려고 해요. 헤어디자이너가 말을 시키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 때문에 미용실에 가지 않죠. 그래서 제가 한두 달에 한 번씩 커트를 해주고 있어요.
성인이기에 힘을 내서 이겨나가고는 있는데 어린 시절의 경험들 때문에 그리고 기질적인 면까지 포함하여 협소한 인간관계 형성을 하고, 그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어요. 저자들의 엄마도 걱정했었겠구나 싶었죠. 여주는 성인이 되어 아이를 낳고 키우는데, 이 아이 또한 예민한 기질을 타고났어요. 그래서 엄마인 여주는 또 걱정을 하죠. 자신의 탓인 것 같고 자기로 인해 이런 일을 겪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거예요.
하지만 모두들 조금씩 성장하고 마음을 열기 시작해요. 여진과 여주가 다른 이들보다 조금 늦게 말문을 열고 사회로 뛰어들었던 것처럼 모두들 언젠가는 조금씩 열리리라 믿어요. 그들은 지금 한의사가 되어, 치과 의사가 되어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는걸요.
생계를 이끌어나가기 위해 늘 바빴던 어머니의 고단함이 글에 묻어있는 걸 보고, 이들은 엄마를 참 사랑하는구나 하는 걸 느꼈습니다. 함구증을 겪고 있을 때에 자신들이 왜 그런지 설명할 수 없었고 엄마 아빠 또한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이들은 사랑했어요.
손주처럼 아껴주던 시터 할머니와의 애착형성이 있었기에 더욱 따스한 사람으로 자라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들의 삶을 읽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참 조심스럽네요. 글을 읽고 나름대로의 단정을 지어버리는 건 아닌가 하는 미안함도 있고요.
지금은 어엿한 성인으로서 많은 사람과 마주치며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서는 일곱 살의 자신들이 웅크리고 있어요. 지금 이 상황이 불편하다고 표현조차 하지 못하는 아이가 말이죠. 과거의 자신을 끌어안고 다독이며 치유하고 있지만, 여전히 상자 안에는 아이가 있어요.
이 글을 읽으면서 제 안의 상처받은 어린아이가 이제는 자신을 기억해 주지 않겠느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저는 조심스레 좋은 기억들만 끄집어내어서 살며시 안아보려고 해요. 슬프고 괴로웠던 일들은 결국 분노로 자꾸만 치받아 뜬금없이 눈물을 흘리게 만들거든요.
상처와 불안을 안고 있던 쌍둥이 자매의 어린 시절, 그리고 지금의 이야기는 서로에게 편지가 되면서 저에게도 잔잔한 이해와 응원이 되었어요. 참 고마운 책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