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실 끝의 아이들
전삼혜 지음 / 퍼플레인(갈매나무)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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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붉은 실 끝의 아이들>을 펴기 전에 안예은의 '홍연'을 BGM으로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전삼혜 작가의 이 SF 소설을 읽으며 듣기에 가장 적합한 배경음악이기 때문입니다. 작가 스스로 밝히길 이 음악을 시작으로 '난파'로 이어지는 노래들에 이야기를 붙여서 이 책을 써나갔다고 했으니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음악은 없을 것입니다.

여섯 개의 평행우주 속에 존재하는 '유리'는 각각의 지구에 따라서 서로 다른 이름과 능력을 지녔습니다. 우리 지구의 아이야말로 '유리'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기에 편의상 모두 같다고 표현해 보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흩어져 있는 자신들을 발견하는 재주를 가졌던 이 이 아이는 예지몽을 통해서 사람들의 운명을 예견합니다.

그러나 바뀌는 것도 없고 바꿀 수도 없다는 걸 깨달으며 점점 그 악몽들을 밀어내기 위해 노력할 뿐입니다. 나날이 쌓여가는 우울감에 병원을 다니던 어느 날, 자신을 찾아온 또 다른 자신들을 만나게 됩니다. 다섯 명의 '유리'는 이곳의 '유리'에게 '시아'가 지구의 멸망을 초래할 거라는 사실을 알립니다.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손시아'라는 동급생에게 관심조차 없었지만 찾아온 그들로 인해 인연을 맺고 결국 우정을 나누게 됩니다. 하지만 시아는 죽어야만 하는 운명이었고, 지구의 미래를 위해서 '유리'들은 '유리'에게 '시아'를 죽이라고 종용합니다.

우리가 온 다섯 개의 우주는 멸망하거나 멸망 직전까지 갔지. 그건 다 시아의 능력. 걱정하는 모든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능력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까

-p.47

그러나 지구에 있는 유리는 도무지 그 뜻을 따라야 할 이유를 납득할 수 없습니다. 아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오히려 다른 이들의 고민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주는 선한 아이 '시아'가 희생되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그 능력이 우주의 멸망을 초래한다고 하더라도 그게 무슨 상관인가 싶습니다.

유리와 시아가 가진 초능력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는 사실은 숱한 과거들로 미루어 알 수 있었지만 그래도 이번만큼은 운명을 비껴나가고 싶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책 안에 들어차 있습니다. 책을 읽는 어른인 저는 '그래, 무슨 상관이야. 스스로의 행복을 포기해야 할 만큼 이 유니버스가 소중한 건 아니잖아.'하며 그들을 응원합니다.

하지만 이내 그게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지 깨닫고 스스로에게 제동을 걸었습니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다른 이들은 죽어도 좋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하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얘 하나만 희생하면 다른 사람들은 편안한데...라는 생각을 해도 괜찮은 건가 하며 딜레마에 빠져버렸습니다.

어느 쪽이 옳다고 그르다고 할 수 없는 기로에 서서 저는 그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많은 평행 우주 속에서 다른 선택을 하고 모두 함께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는 유리와 시아가 존재하기를 바라면서. 이 스토리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어나가는 수많은 선택과 아픔을 은유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가자.”

유리는 속으로만 덧붙였다. 우주가 더 이상 출렁이지 않는 곳으로. 우리가 더 이상 도망치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너의 멸망으로.

-p.218

운명의 '붉은 실'이 존재한다는 건, 일어나야 할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는 걸 뜻합니다. 우리의 지구를 찾아온 다른 '유리'들은 이미 자신의 '시아'를 죽이고 왔습니다. 그들의 시아는 엄마, 쌍둥이 등 가장 소중한 누군가였습니다. 대부분 죽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요를 받고 - 스스로의 운명을 인지하고 뜻을 따랐습니다.

각각의 지구에서 베이, 륜, 토토, 렌, 진이라고 불렸던 아이들은 고통과 상처를 안고 있습니다. 그 스토리가 <붉은 실 끝의 아이들> 사이에 꼭꼭 숨겨져 있습니다. 특수능력자임과 동시에 사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소수자인 그들은 늘 슬프며 운명을 따라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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