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하지 않을 권리
김태경 지음 / 웨일북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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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기준에 따라서 현상이라거나 타인을 재단합니다. 때로는 위로의 말이랍시고 건넨 게 더 큰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가끔은 침묵하는 게 더 도움이 된다는 걸 알야야 합니다. 크고 작은 범죄에 노출되었던 사람에게 '유난이다'라는 말로 생채기를 내기도 하고, '다 잊으라'라고 다독이는 것 모두가 독이 될 수 있다는 걸 <용서하지 않을 권리>를 읽으며 다시금 깨닫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임상수사심리학자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무거운 삶이 더 힘들어지는 게 싫어서 가상이 아닌 현실을 보도하는 프로그램은 잘 보지 않는 편입니다. 발췌해서 시청하곤 하지만요. 김태경은 'PD수첩'이나 '궁금한 이야기 Y'등을 통해 대중에게 잘 알려진 상담심리학과 교수입니다.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강력 범죄 피해자를 돕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을 읽다 보면 실사례가 많이 등장합니다. 속 마음을 털어놓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마주하면서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돌이켜 봅니다. 스스로의 잣대를 가지고 그 사람들이 왜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하는가 의문을 가졌던 적은 없었던가 혹은 너무나 빨리 회복하는 사람을 보면서 내면의 상처는 미처 보지 못한 채 일어서서 다행이라며 안도했던 일은 없었나 반성해 봅니다.

역설적이게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일상 경험을 토대로 범죄 피해자의 생각과 감정을 추측하며 그것을 이해라고 착각함으로써 무수히 많은 오해를 양산한다. 심지어 피해자가 예상보다 더디게 회복하면 무능하거나 게으른 사람이라 비난하고,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하면 피해자 답지 못하다고 손가락질하기도 한다.

-p.56

권선징악

우리는 어렸을 때 많은 동화나 애니메이션을 통해서 권선징악을 주입당했었습니다.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는다는 간단한 이치가 동서양에 넓게 분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선하게 살아야 한다고 그렇게 믿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조차 범죄에 노출되었던 사람에게는 독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나에게 벌어진 일들은 내가 나쁘기 때문이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자기 탓'을 하며 원인을 찾으려고 애를 쓴다는 겁니다.

이는 자신에게 직접 벌어진 일뿐만 아니라 사망 시에는 유족에게까지 해당되는 일입니다. 앞으로 착하게 살아가면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통제감을 돌려받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스스로를 벌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며 죄책감을 안고 살게 됩니다. 권선징악은 정의와 공정성이 담보되어야만 한다(p.60)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문화에 상관없이 거의 모든 아이가 '콩쥐 팥쥐', '헨젤과 그레텔' 혹은 '백설공주'와 같은 동화나 노래 혹은 놀이를 통해 권선징악적 가치 기준을 주입받으며 성장한다. 그렇게 자란 우리는 좋은 일은 선한 사람에게 그리고 나쁜 일은 악한 사람에게만 일어난다는 믿음, 즉 정의로운 세계관을 형성하고 그 덕에 '내가 나쁜 짓을 하지 않는 한 끔찍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토대로 안전감을 느끼며 일상을 영위한다.

-p.179

공감의 잘못된 예

범죄에 노출되었던 피해자를 대할 때 상처와 아픔에 공감하며 회복할 시간을 주는 게 좋다고 합니다. 따라서 나름 도움을 주기 위해서 조언을 한다거나 바깥으로 끌어내려는 시도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강력 범죄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충격을 주기에 섣부른 이끔이 도리어 독이 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의도치 않게 2차 피해를 주기도 합니다.

강력 범죄의 피해를 경험했던 사람이라면 정확히 그 사람을 이해한다고 착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개인마다 느끼는 정도라거나 정황 등이 모두 다르기에 나도 이겨냈으니 너도 해봐라는 식은 좋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는 왜 여전히 그 안에 갇혀있을까 하는 고통을 안겨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피해자에 대한 공감이든 지목된 가해자에 대한 공감이든 객관성과 중립성이 담보되지 않는 한 진정한 공감이라고는 볼 수 없으며 그것이 초래하는 결과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잔혹할 수 있다.

-p.79

용서하지 않을 권리

이 책에서는 우리가 자극적인 범죄 사건 그 자체에만 주목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면 연일 흥미 본위로 보도하는 기사들을 보며 평소에도 그런 생각을 해왔습니다. 어떻게 살해당했는가 그리고 범인이 한 기이한 행동은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에 우리는 피해자나 유족에 대해서 돌아보기는커녕 사건 그 자체만 자극적으로 대하곤 합니다.

어쩌면 감정이입을 했을 때 스스로도 고통스럽기에 애써 피하려고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몇몇 사건에 있어서는 자려고 하면 눈물이 나올 정도로 괴로웠었으니까요. 제3자가 느끼는 트라우마라고 하기에는 약한 것일 테지만 회피하고자 하는 것은 본능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가 피해자의 삶을 책임져 줄 수 없다'라고 말하는 저자의 말에 상당히 공감합니다. 피해자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조금씩 회복하며 챙겨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시한을 우리가, 주변인이 정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아이를 잃은 부부에게 죽은 아이는 잊고 하나 더 낳으라는 말을 건네는 사람이 있다는 글을 읽고선 경악했습니다.

억울함과 분노가 가라앉기에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지 타인은 알지 못합니다. 너무나 담담해도, 사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도 손가락질하고 남들처럼 살아보려 미소 지으면 그 웃음마저 욕하는 일이 다분합니다. 호기심을 거두고 멀리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는 걸 모릅니다.

도움을 주고 싶다면

만일 주변에 성범죄를 포함한 강력 범죄에 노출된 사람이 있다면 <용서하지 않을 권리>를 읽어보시라 권하고 싶습니다. 226페이지서부터 그들에게 어떻게 대하는 게 진짜 도움이 되는지 잘 나와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피해자가 겪는 트라우마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으로 인한 STS 간접 피해를 입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이는 가족뿐만 아니라 상담자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연민 피로나 공감 피로라고도 불리며 피해자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적당한 지지라는 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아직까지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마냥 슬프기만 합니다.


사건의 단면만 바라보는 게 아니라 피해자를 이해하는 마음을 키워야겠습니다. 오롯이 그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위로할 수는 없기에 적어도 흥미 본위로 사건을 대하는 일만은 없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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