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끝 아파트에서 유령을 만나는 법 고블 씬 북 시리즈
정지윤 지음 / 고블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때때로 증강현실을 사용하는 놀이 기구나 기계들을 만나고는 하지만 3D 멀미가 있는 터라 체험하기가 두렵습니다. 하지만 만일 이것이 대중의 삶 속에 스며들어와서 누구나 일상에서 흔히 만나게 된다면 마치 지금 착용하고 있는 안경과 같이 자연스럽게 여겨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도수를 맞추었을 때에는 약간의 위화감이 있지만 착용한 채로 사나흘을 보내고 나면 거리감도 익숙해져서 아주 자연스러워지듯 말이죠. 그런데 만일 웨어러블이 아닌 생체 장착형이라면 어떨까요? 칩을 이식했다거나 아니면 나노로봇 같은 것이 들어가서 세팅이 되는 방식으로 말이죠.

새로운 현실과 마주하고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해야만 알 수 있었던 것들을 그냥 자동으로 알 수 있게 되는 장점이 있겠죠. 기업에서는 광고를 직접 쏟아붓고 거리는 더 이상 회색빛이 아닌 총천연색으로 빛날 것입니다. <세상 끝 아파트에서 유령을 만나는 법> 표지 그림처럼요.

하지만 확장현실이 꺼졌을 때의 적막감은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고요할 겁니다. 만일 지금이 증강현실 상황이고 스위치를 오프 시켰더니 책상 하나와 의자 하나가 전부인 방에 앉아있다고 가정해 보세요. 얼마나 황량하겠습니까? 그래서 이 소설 속 사람들은 확장현실이 상용화된 이래 꾸준히 이 프로그램을 사용해왔습니다. 더 이상 칙칙한 삶을 견디기 어려워졌던 탓이죠.

저는 절대 싫습니다. 결국 누가 내 뇌에 접근해서 정보를 준다는 건데, 그 말은 반대로 해킹도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나의 기억을 훔쳐보는 것도 싫고 억지로 무언가를 주입당하기도 싫습니다. 그러면 저는 이 소설의 설정도 싫어했을까요? 그건 아닙니다. 이런 세상을 상상하며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것만은 즐겁습니다.

다만, <세상 끝 아파트에서 유령을 만나는 법>의 주인공 요한이가 사는 아파트 단지는 이런 확장현실이 허용되지 않는 공간입니다. 바깥세상보다 조금은 칙칙하지만 그래도 학생답게 살아가던 요한이는 어느 날 갑자기 친구 J를 잃게 됩니다. 술에 취해서 죽어버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었기에 수학 과외쌤에게 자신을 도와달라고 부탁합니다.

J의 죽음에 숨겨져있는 비밀을 캐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은 주인공 요한이와 쌤 둘의 이야기로 진행됩니다. 명석한 두뇌를 가진 쌤은 요한이를 도와주기로 하고 나노로봇을 통해 확장현실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그곳에서 살고 있는 재즈와 함께 셋이서 사건을 파헤치고자 합니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베니스힐 아파트는 확장현실을 상용화한 세상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입니다. 몸에 장착해야 하는 텐서 칩을 거부하고 있기에 외부에서 들어오는 사람들도 정문을 통과하면 바로 칩을 꺼야 합니다. 그렇게 겉보기에는 의견을 통일하고 단단한 결속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숨겨진 음모와 더불어 은연중에 반목하고 있었습니다.

이 소설은

요한이라는 소년이 쌤과 재즈의 도움을 받아서 J의 죽음을 파헤치려는 스토리를 따라가고 있지만 미스터리라기에는 좀 빈약합니다. 추리를 할 수 있는 재료도 없거니와 단서도 상당히 부족합니다. 따라서 독자는 두 주인공의 시선과 생각을 따라가며 읽어나가야 합니다.

그들이 확장현실이라며 즉석에서 눈앞에 그리듯 보여지는 것들을 독자인 우리는 뇌 안에서 스스로 그려냅니다. 이것은 타인에 의해서 심어지는 이미지보다 더욱 강렬하면서 동시에 때로는 비논리적 구성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은 이것이야말로 완벽하다고 은연중에 믿는 것입니다.

이런 장면을 리얼하게 구현하기 위해서 저자는 실제로 존재하는 지명이라거나 브랜드를 사용합니다. 덕분에 독자는 조금 더 구체적이면서 정확한 상상을 하게 됩니다. 이를테면 '앞에서 개가 뛰어온다.'는 읽는 사람에 따라서 다양한 개를 상상하지만 '앞에서 비숑프리제가 뛰어온다.'는 그 견종을 아는 사람이라면 하얗고 몽실몽실한 것이 달려오는 상상을 하게 된다는 거죠.

그렇기에 우리는 허구를 통해서 좀 더 사실적인 상상을 하며 베니스힐 아파트로 접근하게 됩니다. 이러한 시도가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미스터리는 아니지만 특수한 상황을 우리 앞에 던져주면서 어떤 상상력까지 동원하며 이야기를 따라가게 하는 힘이 참 좋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세상 끝 아파트에서 유령을 만나는 법>은 미스터리는 아니며, 근미래에서 벌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소년의 성장 드라마를 그려냅니다. 아파트값이 오르기를 바라는 사람들에 대한 풍자극이기도 하고요. 소설의 타깃층은 좀 애매하긴 하지만 나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