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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시간 ㅣ 스토리콜렉터 94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전은경 옮김 / 북로드 / 2021년 7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름을 삼킨 소녀로 셰리든을 처음 만났습니다.
넬레 노이하우스는 스릴러, 미스터리 팬에게 낯설지 않은 이름으로 '백설공주에게 죽음을'로 시작하는 타우누스 시리즈로 아주 유명한 작가입니다. 이번에 읽은 셰리든은 타우느스 시리즈가 아닌 '여름 시리즈'입니다.
상당히 많은 등장인물과 각각의 설정을 드러내 보인 탓에 북유럽 소설의 힘듦을 알게 해주었던 타우누스 시리즈와는 달리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소설은 딱 필요한 인물들만 등장하기 때문에 흡입력은 무척 좋은 편입니다. 다만, 등장인물 간에 얽힌 것들이 많기 때문에 책에서 친절하게 실어준 그랜트 집안 가계도는 상당히 도움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작의 스토리를 상당히 잊어버린 저로서는 지난 포스팅을 찾아보면서 기억을 되짚어야 했습니다. 그냥 막연히 셰리든은 비호감이었는데... 하는 인상만 남아있었거든요. 첫 번째의 이야기 <여름을 삼킨 소녀>는 제 스타일의 소설이 절대 아니었습니다. 넬레 노이하우스라는 이름 때문에 미스터리, 스릴러 일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읽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는데, 그걸 버리고서라도 정말 그랬습니다.
출생이 비밀이 있는 소녀 - 입양된 셰리든이 양어머니이지만 친이모 인 탓에 이모라고 내내 부르는 (그러면서 양부는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이에게 구박을 받다가 여름방학의 어느 날 사랑에 눈을 뜨고 첫 경험을 합니다. 그 뒤로 육체적인 욕망에 눈을 떠버린 건지 뭔지 아무튼 저에게 대혼란을 가져오는 짓들을 합니다. 아버지나 삼촌 뻘의 남자들을 유혹하기도 하고 그들의 유혹에도 빠져버리는데요, 어른들의 그릇된 욕망에 희생을 당했다고 보기에는 전혀 그런 캐릭터가 아니었습니다.
학교 수업과 집안일에 시달렸다고는 하지만 밴드 연습도 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고 남자와 애정행각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시간 여유가 있었단 겁니다. 실제로 집에서 그렇게 시달려보았던 사람으로서는 그녀의 여유로운 시간 활용(?)에 도대체 무엇이 불만인가, 혹시 사춘기 소녀의 잘못된 판단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따뜻한 눈으로 보아주는 이웃도 있었고, 아버지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불만과 욕망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셰리든을 좋아할 이유가 없었죠. 어린 시절 비극을 겪었다지만 자업자득인 것 같은 기분도 들고.
결국 이 집안은 <여름을 삼킨 소녀>에서 사달이 납니다. 셰리든 출생의 비밀의 대부분이 밝혀지고, 막내 오빠 에스라의 비밀이 밝혀지는 바람에 그녀는 가출을 감행하죠. 그 사이 막내 오빠는 자신의 집안에 총질을 해대는데, 무기는 세상에 자신의 엄마가 조달해 주었다고 하는군요. 다섯 명이 사망하고 두 명이 중상을 입는 큰일이었습니다. 에스라 역시 이웃에서 사살당하는데, 이 일을 뉴스로 알게 된 셰리든이 놀라 집으로 돌아오려고 하지만 체포나 다름없는 식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사람들은 셰리든 때문에 이 모든 일들이 벌어진 것처럼 이야기를 합니다. 진실은 그들 중 아무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지요. '여름을 삼킨 소녀'에서 셰리든에게 화가 많이 나 있었던 저 조차 그녀를 안타까워할 정도였으니까요. 셰리든은 아직 10대였지만 자신을 괴롭히는 운명에서 벗어나려 애를 쓰고 노력합니다. 부당한 일에 맞서거나 싸우면서 앞으로 나아갑니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에 또 실수를 저지르고 말죠.
이 애정결핍 증상을 보이는 아가씨 셰리든은 <폭풍의 시간>에서 섣부른 결혼식을 할 뻔합니다. 상대는 무척 좋은 사람이에요. 좋은 집안에서 자란 의사였죠. 하지만 웨딩드레스를 가봉하다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경악하며 웨딩드레스를 찢어버린 그녀는 그곳에서 뛰쳐나가다가 한때 애인이었던 포주에게 잡힙니다.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했지만 약혼자에게 자신의 과거를 말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는 그녀와의 결혼을 포기합니다.
하지만 끝까지 매너가 있는 그는, 고향의 이웃이자 친구인 니컬라스를 불러서 셰리든이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죠. 이렇게 해피앤드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는 '여름 시리즈'를 완결 짓는 소설 <폭풍의 시간>의 첫 스토리일 뿐입니다.
그녀는 이부 오빠 조던과 재회도 하고 엄마를 죽인 이를 만나러 교도소에 방문하기도 합니다. 마치지 못한 고등학교에 진학하고자 하지만 선생님과의 섹스 스캔들을 벌였던 그녀에게 그것은 허락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자신이 고향으로 돌아오기 전날 가족들과 이사를 했다는 호레이쇼 목사의 일로 충격을 받기도 하는데요, 마음으로 사랑했든 육체적인 사랑이었든 목사이자 유부남인 그와의 일을 아직도 안타까워하며 마음 아파하는 셰리든을 보면서 얘가 아직도...라는 마음에 지난 6년 동안 조금 가지고 있었던 호감을 또 갖다 버릴 수 있었습니다.
이번 소설에서 그녀는 자신의 꿈이었던 가수가 되기 위한 발돋움을 합니다. 그 앨범의 제목이 <폭풍의 시간>이었고요. 이제는 더 이상 방황하지 않고 똑똑히 자신의 앞을 보면서 나아갈 수 있을까요? 셰리든은 저에게 또 고구마를 먹이려고 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이야기가 진행될지 꾸역꾸역 삼키며 끝까지 나아갔습니다.
아무튼 이 시리즈는 이렇게 끝이 납니다. 셰리든이 호감이든 비호감이든 자신의 인생을 살아나가는 인물임에 분명하죠. 상당히 입체적인 인물상임과 동시에 불타는 고구마 같은 사람입니다. 이 시리즈를 읽는 다른 독자들에게는 어떻게 비칠지 무척 궁금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