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어하우스 - 드론 택배 제국의 비밀 스토리콜렉터 92
롭 하트 지음, 전행선 옮김 / 북로드 / 2021년 2월
평점 :
절판


장거리 이사인데다가 아주 작은, 정말로 작은 평수로 이사하다 보니 많은 것들을 버리고 올라와야 했고, 그리고 나니 또다시 많은 물건을 사야만 했습니다. 무소유 이사라고 이름 짓고 마치 퀘스트를 진행하듯 많은 시간을 소요하며 물건을 처분했는데, 이번에는 전직 퀘스트 인 양 또 많은 물건들을 사들였습니다.

굵직한 것들은, 이를테면 식탁이라거나 책상 같은 것은 정부물품 재활용센터에서 상당히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만, DIY 조립식 행어나 선반, 공간 박스 같은 것들은 쿠팡을 통해 주문하고 조립하여 이리저리 흩어져 있던 것들을 정리했습니다. 좀 뿌듯하더군요. 조립할 때는 힘들지만 완성하고 난 후의 뿌듯함이란 별것 아닌데도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요 매트 같은 것은 네이버 쇼핑을 통해 구매하였고, 장 보기는 인근 홈플러스의 배송을 이용하였습니다. 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주문할 물건이 많아서 쿠팡 와우 회원도 - 첫 달 무료라니 - 가입했습니다. 무척 놀라웠습니다. 쿠팡은 쓸데없이 새벽에 배송을 해주겠다고 하질 않나. 불필요한 서비스라서 낮에 오라고 체크했습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CJ 택배도 하루에 두 번이나 방문해서 물건을 배송해 주었습니다. 제주는 기본이 이틀이고 휴일이 끼면 알라딘 책 배송이라고 하더라도 일주일을 기다리는 게 예사였던 터라 신속 정확 빠른 배송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이렇게까지 빨리 받을 필요는 없었는데... 하는 마음과 더불어서 당장 필요한 물건인데 빨리 배송되어서 좋다는 마음이 공존했습니다. 이렇게 빠름 빠름 하는 세상에 살아도 좋은 것인가에 대해 잠깐 고민했지만, 일단은 빨리 와서 좋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빠른 배송 서비스를 위해 쉴 틈 없이 일하는 노동자들을 뉴스를 통해서 만나곤 합니다. 가혹한 근무환경 속에서 쓰러져 나가는 사람들, 냉온방 시설이 마련되지 않아서 고통받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설마하니 진짜 그럴까 의심도 들었지만, 에타에 올라오는 경험담 같은 걸 보면 사실인 모양입니다.

이런 시스템의 개선이 없이 오히려 빠르고 정확한 배송 시스템에 열광을 한다면 - 게다가 아마존에서 시작한 드론 택배 시스템이 눈앞으로 다가와 하루 로켓 배송을 넘어서 한 시간 드론 배송으로 바뀐다면, 그 물품을 챙기기 위한 노동자들의 삶은 어떨지 염려스럽습니다. 물론 시스템화해서 로봇을 동원한 공정으로 운영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그 역시 많은 실업자들을 만들어 낼 테니 염려스럽습니다. 우리는 빠른 배송을 원하면서도 그들을 걱정하게 되는 딜레마에 빠지고 맙니다.

웨어하우스

롭 하트 장편소설 <웨어하우스>는 드론 한 시간 배송을 기본으로 하는 세상, 근미래에서의 거대 그룹 클라우드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마치 지금의 아마존과 같은 회사로, 거대 기업화하면서 작은 회사들을 집어삼켰고 그로 인해 황폐화된 사회를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회사를 미워하면서도 편리함에 주문하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한편으로는 그곳에서 일하기를 동경합니다. 다른 일을 해서는 먹고살기 힘들기에 마치 유토피아와 같은 그곳에 취직하기를 열망합니다. 그곳은 숙식 제공까지 해주므로 다른 부대 비용이 들지 않으니 무척 좋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곳은 그리 녹록한 곳은 아닙니다.

노동의 강도는 상상초월이고, 노조를 조성하는 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 통제받으며 일을 합니다. 안전장치를 이용해서 물건을 나른다면 제시간 내에 업무를 마칠 수 없으므로 안전 수칙 따위는 무시해야 합니다. 만일 다치거나 아프다고 해도 웬만하면 병원을 이용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이는 점수의 하락을 의미하고 결국 컷데이에 해고당하고 맙니다.

샤워시간조차 마음대로 갖지 못하고 문밖을 나서는 것조차 GPS를 통해 기록되는 이런 곳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까지 잃어가며 노예처럼 부려질 바에는 나가는 것이 좋지 않은가 싶지만, 이곳에서 해고당하느니 자살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들에겐 죽거나 고된 노동을 하거나 하는 선택지 밖에 없었던 걸까요.

이곳은 1984의 빅브라더의 통제보다 더한 통제를 받는 곳입니다. 1984에서 윈스턴과 줄리아가 만났던 것처럼 팩스턴과 지니아가 만납니다. - 성격은 딴판이고 만나는 의도도 다르지만 그들이 1984의 그들과 닮았다고 느끼게 된 건 단지 폐쇄되고 통제된 곳에서 이것이 아니면, 이곳이 아니면 살 수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만난 인연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팩스턴은 클라우드에 취업하여 감시관으로 근무하게 됩니다. 지니아는 피커, 즉 물건을 포장하는 고된 업무에 배치되는데 실은 산업 스파이 같은 일을 하기 위해 위장 취업한 용병, 해결사 그런 사람입니다. 그녀는 클라우드의 빈틈을 찾아내기 위해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팩스턴과 친밀한 관계를 갖게 되는데요, 결국 그를 -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사랑하게 된 것 같습니다.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애쓰는 지니아와 팩스턴은 서로 다른 위치에 서 있지만, 결국 클라우드라는 거대 조직에 이용당하고 있다는 것만은 - 이 시대 배경의 어느 누군들 그렇지 않을까마는 - 확실합니다.

이 소설은 기업 잠입 스릴러를 보여주고 있지만, 실은 정말로 다가올 것만 같은 두려운 근미래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미래는 이렇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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