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만나는 트라우마 심리학 - 정신과 전문의가 들려주는 트라우마의 모든 것
김준기 지음 / 수오서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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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 기억은 오로지 ‘위험으로부터 살아남으라’고 하는 긴박한 신호를 끊임없이 내보내는, 변치 않는 단 하나의 목적을 갖고 있다. 생존을 위해서는 정말 최선을 다해야 하니, 트라우마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변할 수가 없는 것이다.

-p.25

저에게는 몇 가지의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그들 중 대부분은 폭력이나 공포에 관한 것인데, 때로는 무감각한 태도로 방어하며 때로는 방 귀퉁이에 처박히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하며 때로는 이 모든 걸 그만두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존재 자체가 부정되면 더욱 그러합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존재의 필요를 일깨워주는 - 스스로는 자신이 그랬다는 걸 모르시지만 - 사람이 나타나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웁니다.

저는, 요즘도 트라우마와 싸우고 있습니다.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어

하지만 어떤 일이 있었든,

그것은 과거의 일이고

이제 너는 거기에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중에서

-p.27

<영화와 만나는 트라우마 심리학>은 정신과 전문의 김준기가 들려주는 트라우마에 관한 진지한 이야기입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저자는 영화를 보며 그들의 트라우마와 마주하고 그들의 심리에 대해 고찰합니다. 영화 속 인물들은 그저 스크린 안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도 존재하는 이들이기에 그들의 아픔을, 공포를, 슬픔을 깊게 이해합니다.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인물들은 공포나 스릴러 속 사이코패스 같은 이들뿐만 아닙니다. 액션 영화나 다큐멘터리, 그리고 애니메이션과 멜로드라마 속에서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릴 적 엄청난 사건들을 겪으며 - 대부분의 트라우마는 단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 반복되는 것 때문에 형성되기 때문에 사건들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 트라우마에 갇히거나 혹은 그래도 함께 그 아픔을 안아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었기에 이겨내기도 합니다.

우리는 영화 속 인물들처럼 누구나 트라우마를 안고 있습니다. 빅 트라우마 일 수도 있고 스몰 트라우마 일 수도 있습니다. 아동 유아기에 형성된 트라우마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치유되는 법인데 어째서 과거에 연연하느냐고 호되게 굴 수 없습니다.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가도 같거나 비슷한 자극이 생기면 그 괴물은 또 튀어나오기 마련입니다. 영화 화이에서의 화이는 트라우마를 마주하고서 극단적인 행동으로 트라우마 촉발 요인들을 해치우지만, 결국 그는 완전히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코믹한 드라마였던 열혈 사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김해일 신부는 이중권이 죽음으로서 트라우마에서 벗어난 것 같지만 언제고 비슷한 상황을 만나면 그 고통은 다시 그를 괴롭힐 겁니다. 다만, 이번에는 함께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에 그를 보듬어 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지요.

<영화로 만나는 트라우마 심리학>은 영화 이야기와 심리학 측면에서 분석하고 다루는 트라우마의 밸런스가 참 좋습니다. 영화 이야기에서 자연스레 풀어나가는 트라우마에 대한 모든 것들은 나 자신의 트라우마를 들여다보기에 좋았습니다.

언젠가 나를 짓누르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온다면 - 지금은 싸우고 있는 중이고 엑소더스를 준비하고 있는 중이라 이다음, 아주 이다음에 - 그때 이야기하겠지만, 이 책에서 밝히는 (p.91) ACE 연구(아동기 부정적 경험) 열 가지 체크리스트에서 여덟 가지를 체크한 나는,

울먹이면서 이 책을 읽었습니다. 때로는 감추어두었던 기억의 한편이 멋대로 솟아올라 눈물이 넘치고 가슴이 아파서 책 읽기를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페이지를 넘겨가며 가까스로 읽다가 나의 부정적인 면은 내 탓이 아니라는 걸 느끼고, 그래도 이겨내며 잘 살아왔구나 했고, 그걸 내 아이에게 물려주지 않으려 부단히 애를 썼다, 참 장하다는 생각이 들어 나를 토닥여주며 스스로를 안아주었습니다.

트라우마를 마주하는 것 자체가 치유의 시작입니다.

<영화로 만나는 트라우마 심리학>을 읽으며 불쑥불쑥 찾아오는 기억에 화를 냈다가 울었다가, 숨을 쉬기 어려웠다가 하는 감정의 파도를 겪었습니다. 내가 잔잔한 상태였다면 좋았겠지만, 마침 격풍을 맞고 휘둘리지 않기 위해 애쓰는 상황이었기에 더 그랬을 겁니다.

모든 일이 잠잠해진 후에, 그러니까 벚꽃이 필 무렵에 이 책을 다시 읽는다면 어떨까 하며 책의 맨 뒷장을 넘겼습니다. 저자가 다룬 영화를 보며 울다가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을까요. 부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트라우마는 어디에나 있지만

트라우마를 치유할 힘도

우리 주변 어디에나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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