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만나는 트라우마 심리학>은 정신과 전문의 김준기가 들려주는 트라우마에 관한 진지한 이야기입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저자는 영화를 보며 그들의 트라우마와 마주하고 그들의 심리에 대해 고찰합니다. 영화 속 인물들은 그저 스크린 안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도 존재하는 이들이기에 그들의 아픔을, 공포를, 슬픔을 깊게 이해합니다.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인물들은 공포나 스릴러 속 사이코패스 같은 이들뿐만 아닙니다. 액션 영화나 다큐멘터리, 그리고 애니메이션과 멜로드라마 속에서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릴 적 엄청난 사건들을 겪으며 - 대부분의 트라우마는 단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 반복되는 것 때문에 형성되기 때문에 사건들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 트라우마에 갇히거나 혹은 그래도 함께 그 아픔을 안아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었기에 이겨내기도 합니다.
우리는 영화 속 인물들처럼 누구나 트라우마를 안고 있습니다. 빅 트라우마 일 수도 있고 스몰 트라우마 일 수도 있습니다. 아동 유아기에 형성된 트라우마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치유되는 법인데 어째서 과거에 연연하느냐고 호되게 굴 수 없습니다.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가도 같거나 비슷한 자극이 생기면 그 괴물은 또 튀어나오기 마련입니다. 영화 화이에서의 화이는 트라우마를 마주하고서 극단적인 행동으로 트라우마 촉발 요인들을 해치우지만, 결국 그는 완전히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코믹한 드라마였던 열혈 사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김해일 신부는 이중권이 죽음으로서 트라우마에서 벗어난 것 같지만 언제고 비슷한 상황을 만나면 그 고통은 다시 그를 괴롭힐 겁니다. 다만, 이번에는 함께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에 그를 보듬어 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지요.
<영화로 만나는 트라우마 심리학>은 영화 이야기와 심리학 측면에서 분석하고 다루는 트라우마의 밸런스가 참 좋습니다. 영화 이야기에서 자연스레 풀어나가는 트라우마에 대한 모든 것들은 나 자신의 트라우마를 들여다보기에 좋았습니다.
언젠가 나를 짓누르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온다면 - 지금은 싸우고 있는 중이고 엑소더스를 준비하고 있는 중이라 이다음, 아주 이다음에 - 그때 이야기하겠지만, 이 책에서 밝히는 (p.91) ACE 연구(아동기 부정적 경험) 열 가지 체크리스트에서 여덟 가지를 체크한 나는,
울먹이면서 이 책을 읽었습니다. 때로는 감추어두었던 기억의 한편이 멋대로 솟아올라 눈물이 넘치고 가슴이 아파서 책 읽기를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페이지를 넘겨가며 가까스로 읽다가 나의 부정적인 면은 내 탓이 아니라는 걸 느끼고, 그래도 이겨내며 잘 살아왔구나 했고, 그걸 내 아이에게 물려주지 않으려 부단히 애를 썼다, 참 장하다는 생각이 들어 나를 토닥여주며 스스로를 안아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