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도시 SG컬렉션 1
정명섭 지음 / Storehouse / 2020년 11월
평점 :
절판


정명섭의 제3 도시는 개성 공단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풀어내는 미스터리 소설입니다.

클로즈드 서클 미스터리 장르가 아닌데도 폐쇄된 제3의 공간이라는 특성 때문에 미묘하게 갇혀있는 느낌이 듭니다. 이들은 드나들 수 있으나 갇혀있고, 통제된 듯하지만 모든 걸 통제 당하는 것도 아닌데, 겉으로 보이는 통제자와 실제로 그들을 단속하는 이는 또 다른 이라는 복잡하고도 미묘한 공간적, 사회적 배경에서 존재합니다.

언뜻 보면 한통속이고 또 달리 보면 척을 지고 있는 것 같은데 이 모든 일들이 복잡하게 얽혀있어 주인공부터 조연에 이르기까지 그들 스스로도 누가 자신의 편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그런고로 저는 낯선 환경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그곳은 실재하고, 절대로 사건이 일어나서는 안되는 곳입니다. 세상 어느 곳보다도.

마치 스탈린 체제의 소련 땅처럼, 그곳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결국' 살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여긴 사고가 나면 안 되는 동네야."

"제가 있던 군대도 사고가 나면 절대 안 되는 곳이었습니다. 원래 사고는 절대 일어나지 말아야 할 곳에서 일어납니다."

"아무튼, 여긴 사고가 나서는 절대로 안 되는 곳이야."

-p.42

곪을 대로 곪은 부정행위가 터져버린 것일까요. 아니면 개성 공단의 폐쇄로 악화된 남북 감정을 노린 세력의 음모일까요.

'제3 도시'의 미스터리는 이른 아침부터 내 손목을 잡아끌고 갑니다.

클래식 채널에서 흘러나오는 사티의 짐노페디 조차도 내 혼란을 멈춰주지 않아 스스로 노트에 메모를 해가며 혼란스러움을 가라앉혀야 했습니다.

주인공 강민규는 운영난을 겪고 있는 민간 조사 업자, 즉 탐정입니다. 헌병 수사관 출신의 그가 어떤 사연으로 이곳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상세히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혹시 후속작이 나온다면 그의 배경을 좀 더 자세하게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프리퀄이 좋겠지만, 정명섭 작가 지하실에서 시카고 타자기를 두들기고 있는 난쟁이 요정들이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주길 기대하며 지금은 개성 공단을 배경으로 하는 <제3도시>에 집중해봅니다.

강민규의 서울에 있지만 이름만은 뉴욕 탐정사무소인 사무실에 개성 공단에서 속옷 공장을 운영 중인 외삼촌 원종대가 찾아옵니다. 자신의 공장에서 물품이 자꾸만 사라지는 것 같은데 CCTV를 달 수도 없는 데다가 함부로 사람을 자를 수도 없는 곳에서 벌어지는 물품 횡령 사건을 조사해 달라고 합니다. 공단에 과장 직함을 달고 들어간 그는 금세 남측 책임자인 법인장 유순태가 수상쩍다는 느낌을 받았으나 주변 공장들과 더불어 좀 더 조사하고자 합니다. 그러던 중 강민규가 실은 남측 국정원 요원이라는 헛소문이 퍼지고 이로 인해 유순태와 강민규는 심하게 다툽니다. 그리고 유순태가 자신의 방에서 살해된 시신으로 발견됩니다.

강민규는 제1 용의자가 되고, 체포당하고 마는데요.

강민규는 자신의 누명을 벗고 진범을 찾아야 합니다. 이대로라면 추방당해 남한에 가서 살인범으로 조사를 받아야만 합니다. 단서와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살인자로서 재판을 받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강민규는 갇힌 이 공간에서 사건을 추적하기 시작합니다.

살인자는 교묘하게 남과 북 사이에 숨었다. 그리고 살인 자체보다는 그 파장을 감추는 데 힘을 기울일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블랙박스와 CCTV가 없고 서로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사는 이 이상한 도시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은 하마터면 미궁 속으로 사라질 뻔했다.

-p.248

이 소설 <제3 도시>는 개성 공단의 배경과 상황을 상세히, 자연스럽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늘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글을 쓰는 정명섭 작가이기에 개성 공단의 묘사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그의 묘사는 상상에 그치지 않을 거라는 걸 믿고서요.

이 소설은 스토어 하우스 출판사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국내외 장르 소설 시리즈, SG 컬렉션의 첫 번째 책입니다.

그 문을 잘 열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스토어하우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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