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다만 나로 살 뿐 1~2 - 전2권 다만 나로 살 뿐
원제 지음 / 수오서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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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방 선원에서 안거를 하던 원제 스님은 스스로 수행을 하기 위해 세계 일주를 떠납니다. 누군가의 우려처럼 밖으로 다니며 재미있는 것을 즐기기 위함이 아닌, 넓은 세상에서 정진하는 수련입니다.

2년 동안 세계를 돌아다니며 사진과 함께 기록한 에세이라니, 무척 독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왕오천축국전 같은 걸까요, 아니면 서유기처럼 서천취경을 목표로 가는 길일까.

광활한 자연 위에 홀로 서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며 갖은 상상을 했습니다만 <다만 나로 살 뿐>은 고전과 같은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원제 스님은 본디 소박하고 규칙적인 삶을 좋아하는 이입니다. 그가 군 제대 후 고무신이었던 여인에게 홍대 앞에서 거침없는 하이킥을 맞은 후 출가를 결심했다던데, 진담인지 농담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그는 출가했고, 해인사의 스님이 되어 수행을 하던 중, 2012년 세계 일주를 계획합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아이러니라고 하는군요.

세상이 바뀌길 원한다면 내가 먼저 바뀌어야만 하고, 세상이 안정되길 원한다면 내가 먼저 안정이 되어야 합니다. 인류 역사의 위대한 성현들은 하나같이 나의 변화라는 과정을 뼈아프게 치러냈다는 사실을 잘 알아야만 합니다. 그러한 과정 뒤에 그 성현들의 역할과 본분이 각자가 처한 사회나 문화라는 인연에 따라 자연스럽게 익어가며 변화를 일구어냈습니다. 나의 변화라는 수순을 경시하고 곧장 자신의 생각대로 사회를 바꾸려는 열망은 아무래도 성급합니다. 깊은 안목이 그 모든 변화의 폭을 넓혀주는 것이므로, 안목을 심화하기 위한 수행의 시간은 필수적입니다.

-1권 p.190

원제 스님은 카우칭서핑으로 숙박을 하기도 하고 여의치 않을 때는 숙소를 잡고 생활하기도 하며 그 여정을 사진과 글로 기록해 나갔습니다.

얼마 전 한 스님의 풀 소유로 스님들에 대한,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 어쩌면 좋아 보이는 - 행동을 할 때 거부감이 일어났던 것도 사실입니다. 허나 그 풀소유 스님에 대한 이야기, 일부 타락한 종교인들을 배제하고 보편적인 스님들에 대해서는 저에게 편견이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건 몇 년 전 제주시 한복판 주택가에 위치한 제법 큰 절 앞에 살았던 탓도 있을 겁니다. 그들에게는 새벽을 깨우고 마물을 내쫓는 의식이었지만 저로서는 동트기도 전에 괴로움을 맛보아야 하는 시간을 겪으며, 이 종소리에 괴로운 나는 혹시 마물인 건가 고뇌할 정도의 스트레스가 있었다는 것도 한몫했을 겁니다.

사실상 고정된 문제란 없습니다. 문제란 문제시할 때에만 문제가 되는 법입니다. 잘못된 것으로 보이는 그 어떤 문제도 문제시하지 않는다면 단지 상황이 됩니다. 그리고 상황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흘러가는 것입니다. 문제로 고착되지 않고 상황으로 흘러갈 수만 있다면, 여유는 자연스럽게 스며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여유가 사람들의 성정을 만듭니다. 그래선지 모릅니다. 잔지바르 사람들은 언제나 그렇게 느긋했습니다. 그리고 이토록 여유를 누릴 줄 아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섬이라면, 그 섬마저도 한껏 여유로운 풍광을 보여주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이것이 제가 잔지바르를 ‘여유’라는 단어로 기억하는 이유입니다.

-2권 p.111

원제 스님의 <다만 나로 살 뿐>을 읽으며 저의 편견이 조금씩 깨져갔습니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집 앞의 스님들을 보면서도 깨지지 않았던 편견이 그로 인해 깨어졌으니 이는 책을 통한 연이 아닌가 합니다.

그렇다고 갑자기 불교에 대한 호감이 늘어난 수준은 아닙니다. 마치 원재 스님이 런던에서 교회 예배에 참석했을 때와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원제 스님은 '종교를 떠나'가 아닌 - 애초에 떠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죠 - 종교에 대한 예를 지키며 각국을 여행하고 많은 이를 만났습니다.

무척 좋은 사람도 있었지만 때때로 범죄자, 꼬마 폭력배 같은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소매치기, 도난 사건을 겪기도 합니다. 소설에 나오는 - 허허 웃으며 '이 또한 연이겠지요.' 하는 타입의 스님은 아니라서 슬프고 화가 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국은 내면의 의지와 사색으로 정화시킵니다.

세계 일주를 하면서 저는 줄곧 두루마기를 입고 삿갓을 쓰고 다녔습니다. 많은 짐을 메고 걸어가야 할 때나, 스쿠터를 타고 운전할 때, 험한 산을 오를 때, 해변에서 수영할 때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두루마기와 삿갓이었습니다. 제가 고집스럽게 두루마기와 삿갓 복장을 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외형적으로 눈에 띄는 이 복장이 저를 보호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 1권 p.223

그리고 오늘 밤 그 기대와 믿음이 저에게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물론 세계 일주를 시작한 지 1년을 훌쩍 넘긴 그 기간 동안 승복은 알게 모르게 저를 지켜줘 왔을 것입니다. 분명히 그럴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외국인 친구들에게 이 승복을 아머(Armor)라고 소개했습니다. 나쁜 상황에서 헤쳐 나오게 해주고, 혹 지독하게 나쁜 상황도 덜 나쁜 상황으로 변화시키는 기적의 아머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승복은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보호구였습니다.

-2권 p.124

이 여행기는 거룩하지도 신비하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읽은 여행 에세이 중 단연 최고였습니다. 눈을 뗄 수 없는 전재, 팔랑거리지 않는 여정. 지나치게 무겁지 않으면서 마음에 와닿는 철학. 그리고 그의 고집과 의지.

비록 다른 종교이지만 그의 여정을 따라가는 길이 어찌나 즐겁던지.

그의 삿갓 차경과 염주 현요와 만나게 된 인연처럼 나 또한 인연이 되어 그와 함께 그 길을 눈으로 좇아 걸어갑니다.


수오서재에서 제공 받은 도서를 읽고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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