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이사이드 클럽 스토리콜렉터 83
레이철 헹 지음, 김은영 옮김 / 북로드 / 2020년 5월
평점 :
절판


로마시대의 기대 수명은 불과 25세. 


세계 통계로 보자면 1800년까지도 별반 다를 게 없었지만, 1900년 31세, 1950년 49세, 2000년 66세, 2020년 현재 73.2세입니다. 물론 우리나라를 포함한 중진국 이상에서는 85세 정도라고 합니다. 


1800년에 비하면 세 배 이상 살게 된 셈인데요. 페니실린의 발명 같은 의학의 발전으로 사망률이 낮아지고, 현재는 인공 장기나 기관으로 대체해가며 수명이 연장되고 있습니다. 저만하더라도 임플란트 치아를 세 개나 가지고 있습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신체에 삽입하는 인공 보형물이라거나 인공 장기 등의 사용을 생각해보면 미래에는 마치 낡은 부품을 교체하듯이 하나씩 교체해 나가는 삶도 있을지 모른다는 상상을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어릴 때만 하더라도 그런 일은 은하철도 999를 타거나 하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현실로 다가오지 않았나요.



게다가 - 가끔 아니 자주 경제적 이권 때문에 권고하는 경우도 있지만 - 좀 더 건강하게, 좀 더 오래 살려면 어떤 것을 먹어야 하고, 어떤 것은 피해야 하는지,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교양 프로그램이나 인터넷에서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는 기대수명이 85세이지만 제가 그 나이가 될 때쯤엔 아마 120살 정도는 살아줘야 잘 살았다고 하지 않을까 합니다. 



기대수명이 쭉쭉 증가해 나가다 보면 어쩌면 진짜로 150살, 300살을 사는 때가 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수이사이드 클럽>이라는 SF 소설은 300세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140살 정도에 죽어버려서는 자기 관리 못한 사람 취급받기 딱 좋습니다. 왜냐하면, 태어날 때 이미 뛰어난 유전자를 물려받아 장수하는 '라이퍼'로 정해진 사람이야 뭐 정부의 지침만 잘 따르면 제 수명 다 찾아서 살 수 있지만 '비라이퍼'는 현재의 우리보다 조금 더 살 수 있을까요? 그게 싫으면, 라이퍼처럼 오래 살고 싶다면 고장 나는 장기도 교체하고, 때로는 혈액도 교환하고... 피부도 교체하고... 그런데 그게 다 정부에서 지원해 주는 게 아니라서 돈 떨어지만 숨만 붙어있는 채로 몇 십 년을 살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냥 누워서 숨만 쉬는 거 말이죠. 이 소설 주인공 중 하나인 안야의 엄마가 그랬습니다. 



스웨덴에서 이주해온 오페라 가수인 그녀는 결국 미국의 허름한 아파트에서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채 누워만 있습니다. 안야는 라이퍼이지만 지독한 가난에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었고요.


또 한 명의 주인공 레아는 큰 회사를 다니는 커리어 우먼입니다. 회사에서 지급한 고급스러운 집에 거주하고 있지만 늘 마음 한편 이 불편합니다. 비라이퍼이기에 일찍 세상을 떠난 오빠. 그로 인해 금이 가기 시작한 가정. 결국 레아와 관련된 모종의 사건 이후 아빠는 집을 떠나버리는데요. 88년이 지난 어느 날 길에서 아빠를 발견하고 따라가려고 하다가 그만 차에 치일뻔합니다. 


정부에서는 그녀가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오해해서 자살 방지 프로그램에 보내는데요. 


그곳에서 안야를 만납니다. 



라이퍼이지만 서로 다른 삶을 사는 안야와 레아는 뜻밖의 장소 '수이사이드 클럽'에서 만나게 되는데, 그곳은 장수를 위한 정부의 지침을 무시하는 - 그래봤자 술 먹고, 고기 먹고, 푸아그라 먹고 - 그런 장소였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정부에서 절대 금지하는 '수이사이드'를 해내는 것인데요. 



그들은 제3의 물결. 즉, 영원히 사는 삶을 코앞에 두고 그것에 저항하는 라이퍼들이었습니다. 


엄마와 함께 피폐한 삶을 살고 있는 안야는 그 모임에 적극 참여하고 지지하지만, 레아는 이 클럽의 정보를 팔아서라도 정부의 감시 대상자가 되어 있는 자신의 삶을 원래대로 되돌리려고 합니다. 




이 소설은 SF 스릴러가 아닙니다. 


정부에 의해 통제되고 감시당하는 삶이라니. 그들의 밝은 미래를 위해 정부에서 애써주는 것 같이 보이지만 실은 저조한 출산율 때문에 인구를 유지해야 하는 정부의 술책이 뻔히 보입니다. 


멋지게 살아가는 라이퍼라고 해도 스스로 자신의 존엄을 지킬 수 없다면 그 삶이 과연 행복하다 할 수 있는 것인지 고민됩니다. 만일 정부의 수칙을 잘 지키며 - 그게 통제된 삶이라고 한다 하더라도 - 사는 것이 행복하다면 그렇게 계속 살아가면 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수이사이드 클럽'의 사람들처럼 일탈을 즐기는 것도 일종의 스트레스 해소법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아니 코르티솔 분비까지 신경 써야 하다니. 너무하는 거 아닌가요.



소설을 읽는 동안에는 조금 스릴러 쪽으로 가주었으면 좋겠다, 확장판이 필요하다 생각했지만 지금 이대로도 좋습니다. 결말까지 마음에 듭니다. - 조금 슬프기도 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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