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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덤, 어떻게 자유로 번역되었는가 ㅣ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야나부 아키라 지음, 김옥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3월
평점 :
서양의 사상과 학문이 일본으로 들어가는데 필수적인 것 중 하나가 출판물의 번역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지만 - 서양에서 우리나라로 직접 전해진 경우도 있으나 - 근대에는 서양의 것이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로 들어온 경우가 많았기에 서양문물이 동양으로 전해지기 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말이나 개념은 어떻게 생겨나거나 번역되었는지 <Freedom, 어떻게 自由로 번역되었는가>에서 살펴보는 과정은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지금은 당연하게 사용하고 있는 단어, '사회, 개인, 존재, 자유, 근대, 미, 연애, 권리, 자연, 그(그녀)' 가 불과 100여 년 전에는 사용하지 않던 단어라니 의아했지만 동양적 사고방식으로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앞줄에서 잠깐 언급했던 단어, '근대'조차 이전에는 없던 개념으로, 서양에서 들어와 변화를 거쳤다는 것이 참 흥미로웠습니다. 지금의 느낌으로는 근대란, 현대 이전의 어떤 시기를 말하는 것 같은데, 그 당시에는 '현대'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니 신기합니다.
우리에게 근대는 modern age 일뿐인데요. 그렇다면 혹시 우리가 말하는 '현대'도 미래에는 현대라는 시기를 이르게 될 수도 있을까요?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서양의 단어가 일본어로 변화하고 정착하는 과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었습니다. 일본어를 모르는 저로서는 이게 어떻게 그렇게 변했는가 잘 이해가 안 되었는데요.
이를테면 서구의 철학 용어들을 주로 '존재'와 같이 두 글자의 한자어로 번역해온 이유(p.153)가 체계적으로 잘 설명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어째서 그러한가 하는 의문을 해소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편리한 번역용 일본어였다는 말에 아, 그런 게 있나 보다 하고 넘어갈 수는 있었죠.

새로운 단어가 생성되기도 하고, 있던 단어가 광의로 새로운 뜻을 품기도 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이 책 <프리덤, 어떻게 자유로 번역되었는가>에 소개된 몇 개의 단어뿐만 아니라 더 많은 곳에서 일어났겠지만, '근대'라는 단어를 포함한 '근대화'의 과정에 반드시 필요한 단어의 번역과 변화라는데 의의가 있겠습니다.

** 저자는 '카세트 효과'를 여러 번 언급하는데요. 사실, 무슨 뜻인지 확실히 몰랐습니다. 내가 아는 그 카세트 아니지? 하면서요. 앞에서 설명을 해주었는데 번역어에 집중하다 보니 잊어버린 것인지 뭔지... 하지만 역자 후기에서 시원하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덕분에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환기할 수 있었습니다.
** 요컨대 '카세트 효과'는, 갓 만들어진 번역어가 처음에는 내용이 빈약하고 생소해 보이지만, 생소하기에 오히려 사람들을 매혹함으로써 의미가 풍부해지며 적절한 번역어로서 정착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유', '사회', '개인'과 같은 번역어들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은 것은 가장 적절한 번역어라서가 아니라 그런 '카세트 효과'에 의해서라는 것이다. 즉 '카세트 효과'는 번역어의 성립 과정을 설명하는 저자의 핵심 이론이다.
-p.2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