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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 예찬 - 숨 가쁜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품격 있는 휴식법
로버트 디세이 지음, 오숙은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8월
평점 :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늘어져있고 싶다... 하지만 그러면 어쩐지 살아있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다시 우울해진다. 그러니까 뭐라도 해야 한다. 내가 살아있다는 걸 느끼기 위해 뭐라도 해야 하는데 지금 나의 속도는 나무늘보와 같아서 움직이는 티도 나지 않는다. 이른 아침에 각기 다른 곳에서 만난 - 태풍이 올 걸 알아챈 듯 부지런히 움직이던 달팽이 세 마리가 어쩐지 나를 닮았다.
태풍을 대비하기 위해 화장실 청소부터 뽀드득뽀드득 힘차게 해댔다. 아침으로 먹은 한 입 고구마 한 개, 구운 계란 한 개, 방울토마토 세 개가 위를 가득 채우고 있다. 겨우 이 정도의 위를 가졌으면서 며칠 전 피자 뷔페는 왜 갔던 걸까. 사실 피자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그렇게 먹고 집에 오면 심장이 너무 힘차게 뛰어 잠을 잘 수 없다는 걸 알기 위한 과정이었을까. 제니퍼 로페즈의 음악과 니키 미나즈의 음악을 들으며 청소를 하고선 혹시 단수가 될까 봐 커다란 통에 물을 가득 받아두었다.
그리고 책상에 앉아 책을 폈다. 빈둥거릴 시간이다.
독서는 당신이라는 존재의 만화경을 흔드는 것과 같다. 그 안의 유리 조각들은 예의 똑같은 유리 조각이지만, 무언가가 그것들을 재배열해서 형태를 바꾼다. 당신은 새롭게 자신을 느끼며 자신이 재발견되었음을 깨닫는다. 일상의 자신이라는 감옥에서 해방되었다고 말이다. 결국 독서는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무언가를 하는 가장 멋진 방법이다.
-p.78
<게으름 예찬>은 숨 가쁜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품격 있는 휴식법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빈둥거리는 데에도 품격이 있다니. 이를 학습하는 것은 게으른 게 아니지 않은가. 게으름은 모름지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이미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지만 더욱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라는 마음가짐으로 침구 위에 널브러지는 것이 기본이오. 멍 때리는 건 부수적인 일일 텐데. 이렇게 늘어져있다 보면 차라리 잠이라도 잘 걸 내가 뭐 하는 건가 하는 기분에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난 왜 이렇게 게으른 걸까. 나 자신은 스스로를 게으르다 하고 다른 이들은 부지런하다고 한다. 세상에 단 한 명만이 나보고 게으르다고 한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났으니 기뻐야 하는데, 기분이 나쁘다. 그는 더 게으르기 때문이다. 서로를 게으르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마음이 통하는 걸까. 그것도 기분이 별로다. 나는 왜 마냥 쉬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있는 걸까.
이럴 땐 샷을 추가한 아메리카노 한 잔의 진한 씁쓸함으로 자신을 채찍질한 후 다시 부지런한 세계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커피숍까지 가는 부지런함이 필요하다. 씻고 단장하고 가방에 책도 넣고 신발에 발을 꿰고 계단을 걸어내려가 2.4 킬로미터 정도를 걸으면 커피숍에 도착하겠지. 창밖을 본다. 비가 온다. 안 가.
차는 품위 있는 오락인 반명 커피는 노동자들이 번쩍 정신을 차리고 행동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커피는 총도 아닌 것이 종종 '샷 shot'으로 나온다. 오늘날 도심에는 거리마다 미지근한 커피 한 잔을 무슨 꽃다발이나 병리학 표본처럼 받들고서 사무실이나 건설 현장으로 돌아가는 일꾼, 점원, 은행원, 다시 말해 노동자들이 가득하다. 꼭 커피를 마셔야 한다면 어딘가에 앉아서 마시기를 권한다. 한량이라면 마시는 것이 아니라 앉아있는 것을 갈망해야 한다.
-p.69
여가는 우리를 '시간의 주인'으로 만든다. 일하는 동안엔 결코 시간의 주인이 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시간에 쫓기고 끌려다니는가 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힘들다. <게으름 예찬>에서 들려주는 품격 있는 게으름 중에서 독서만이 나의 제대로 된 게으름인 것 같다. 하지만 때로는 독서마저도 의무감에서, 내가 해야 할 일로 분류해버리곤 한다. 나는 정말 온전히 게으름을 피울 수 있는 걸까.
<게으름 예찬>에는 어려운 이야기와 그렇지 않은 이야기가. 마치 내가 열흘 동안 먹겠다며 사 오고 선 닷새 만에 먹어버린 믹스 넛처럼 섞여있다. 골라 먹는 건 죄책감이 들지만 몇 개의 커피 땅콩 뒤에 즐기는 아몬드는 낮잠이나 늦잠을 잔 날에도 나를 행복하게 할 것 같다.
읽으면 읽을수록 게으름이 아니라 '평온함을 느끼는 법'에 관한 책이라는 걸 느낀다. 정적인 상태에서 나 자신을 위해 행할 수 있는 부드러움 같은 것.
말할 필요도 없지만, 당신은 게으름을 피우기 위해서 행복해야 한다. 행복하기 위해 게으름을 피워야 하는 게 아니다.
-p.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