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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다 버리고 싶어도 내 인생
하수연 지음 / 턴어라운드 / 2019년 6월
평점 :
내가 초라해지는 이 밤만 견디면 괜찮을까.
내일도 그렇다면 내일 밤도 견디고
모레도 그렇다면 모레도 견디고
그렇게 하루하루 견디다 보면
나 언젠간 행복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까.
-p.101
병상에 누워서 얼마나 되물었을까요. 이 고통이 언젠가는 끝나는 것일까, 나를 아프게 하는 것들과 나 때문에 아픈 사람들 모두 괜찮아지는 걸까. 확신 없이 지내는 날 가운데에서도 결코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온 저자 하수연의 투병기, 에세이를 읽었습니다. 밝은 어조로 쓰고 있긴 한데, 몸과 마음의 고통이 와닿아서 제 마음도 아팠습니다.
재생불량성빈혈이라는 희귀 난치병은 대학교 4학년, 졸업작품을 준비하던 그 소녀에게 느닷없이 찾아왔습니다. 어쩌면 몸은 조금씩 자신이 아프다고 알리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직 어린 열여덟의 소녀는 그저 밤새워 졸업작품을 만들고 랩실에서 비척대느라 심하게 고단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엄마와 함께 진찰받으러 갔던 작은 개인 병원에서 큰 병원으로 가 검사를 받으라고 했던 그날도 이토록 심각한 일이 몸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걸 몰랐습니다. 재생불량성 빈혈은 원인불명의 희귀난치병으로 다양한 원인에 의해 골수세포의 기능과 세포 충실성이 감소하고 골수조직이 지방세포로 대체되면서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모두가 감소하는 범혈구 감소증'이 나타나 조혈 기능에 장애가 생기는 것을 말합니다.(p.43) 골수 이식을 받고 잘 정착하지 않으면 남은 인생은 고작 한 학기 남짓. 남들보다 빨리 대학에 갔던 소녀는 남들보다 빨리 사회생활을 하는 대신 투병생활을 시작해야만 했습니다.
지루할 만큼 무난한
이 일상을 얼마나 갈망했던가.
당연한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되었을 때
얼마나 절망했던가.
-p.287
제주에 살고 있던 저자는 서울의 큰 병원에서 골수 이식을 받습니다. 검사부터 과정까지, 그리고 무균실, 항암치료... 그 모든 과정들 하나하나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 과정을 읽어나가는 저 역시 힘들었습니다. 저는 엄마 입장에서 읽으며 힘들었고, 나의 미래일까 두려웠습니다. 저자의 아픔과 병과 싸우는 과정을 읽으면서 나를 걱정하다니. 역시 나는 타인이었습니다. 미안해요.
저자 하수연은 모든 과정을 - 이렇게 간단하게 함축해버리기엔 너무 미안할 정도의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 이겨내고 완치 판정을 받았습니다. 6년이란 시간이 걸렸어요. 감염의 우려 때문에 대중교통을 탈 수도, 친구와 만날 수도 없고, 먹고 싶은 걸 마음껏 먹지도 못하며 지낸 시간입니다. 너무나 힘들어 화도 나고 우울해지기도 했지만 마음에 긍정을 채우기 위해 블로그를 시작했습니다. 자신에게 부정적인 것들을 조금이나마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글을 써나가면서 사람들과 소통하며 그들에게 힘이 되기도 했고, 그들에게 힘을 얻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자신이 완치 판정을 받은 것은 많은 사람의 도움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골수 공여자님께 감사하고 있어요. 이제는 자신의 예전 혈액형이 아닌 공여자님의 혈액형으로 살아가고 있거든요. 헌혈 증서를 보내주었던 수많은 분들께 감사하고, 자신의 곁을 내내 지켜주었던 엄마에게 사랑과 감사를 드립니다. 숨어서 울었던 아빠에게도요.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것들, 우리가 일상으로 지나치는 모든 것들에 감사하고 기뻐합니다. 아니 이 글을 쓰는 데 왜 제 눈가가 촉촉해지는 거죠?
먹먹한 마음으로 책을 덮고 저자의 인스타그램을 찾아가서 사진을 보았어요. 글귀도 보고요. 정말 곱닥하고 아꼬운 아가씨더군요. 다행이다. 장하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는 좋은 날만, 행복한 날들만 가득 채워졌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내 인생이잖아.
갖다 버리고 싶어도 내 인생인데
살아야지, 버텨야지. 일어나야지.
-p.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