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의 생애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야스기 류이치 지음, 박제이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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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이라고 하면 늘 할아버지 같은 모습을 떠올렸었습니다. 하얗게 센 머리와 풍성한 수염, 깊은 눈은 초상화를 보지 않고서도 그의 캐리커처를 그릴 수 있을 정도로 각인되어 있어요. 그런데 세상에, 그가 소년인 적도 있었지 뭐예요.(당연하잖아.)

찰스 다윈은 누구나 알고 있다시피 비글호를 타고 탐험을 했으며, <종의 기원>이라는 저서를 통해 진화론을 주장한 학자입니다. 종의 기원을 읽지도 않았는데 어쩐지 그 책을 읽은 기분이 들어요. 교과서에서도, 진화에 관한 책에서도 그의 이름을 빼놓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그가 어떤 사람이라는 건 잘 몰랐습니다.

이번의 이와나미 신서 <다윈의 생애>에서는 몰랐던 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그의 전기이자 일대기입니다만, 종의 기원을 비롯한 저서나 연구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보지는 않습니다. 그의 청년 시절과 항해 시절을 통해 그가 어떤 사람인가에 주목했습니다. 덕분에 전혀 몰랐던 그를 조금 알게 되었어요.

다윈가의 선조는 링컨주 북부에 사는 요맨 계층이었는데요. 요맨은 젠트리(귀족 지위는 없지만 가문 휘장을 사용하도록 허락받은 계층, 젠틀맨이라는 단어의 유래)의 다음 계층으로 신분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상당히 자유로워진 농민층(p.37)입니다. 후대로 내려가면서 부유층과의 결혼으로 재산은 점점 늘어나서 제법 잘 사는 집안이 되었습니다. 찰스 다윈의 할아버지 이레즈머스 역시 진화론의 선두주자였고, 아버지는 의사였습니다. 어렸을 때 돌아가셔서 추억은 희미한 어머니는 지금도 도자기, 식기로 유명한 웨지우드 가문의 딸이었습니다. 이런 유복한 연구인 집안이라 학자의 길을 걷는 것이 자연스러웠을 겁니다. 빛바랜 권위를 내세우며 자신이 가진 것을 잃을까 봐 전전 긍긍하는 귀족층도 아니고,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는 서민계급도 아니었기에 상당히 자유로운 편에 속했습니다. 후에 그에게 부르주아 학자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연구가 자유로웠지 그의 주장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었던 건 아닙니다. 종교적 세계관으로 창조론이 깔려있는 세상에 그것을 전면으로 반박하는 진화론을 내놓는 건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저서 발표 후 다윈을 원숭이로 한 캐리커처를 실은 신문이나 잡지들이 그를 조롱했습니다. 그는 원숭이가 사람이 되었다고 한 적도 없는데 말이에요.

<다윈의 생애>에서는 그의 자서전과 편지를 통해 청년 시절을 보여줍니다. 호불호가 명확한 청년이었던 모양입니다. 좋아하는 선생님 수업은 열심히 듣고 마음에 들지 않는 선생님 수업은 과감하게 포기하는 그런 청년이었는데요. 제임슨의 지질학과 동물학 강의가 지루하기 짝이 없다는 이유로 평생 지질학을 배우지 않겠다고 에든버러 시절에 결심(p.17) 했음에도 결국 항해 직후 가장 먼저 종사한 과학은 지질학이었다는 건 참 재미있는 일이죠. 그가 항해할 때 가지고 간 한 권의 책, 라이엘의 <지질학 원리>를 통해 많은 지식과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었는데요. 항해 중에 했던 수많은 관찰에는 지질학자로서의 눈이 작용했다고 합니다. 다윈의 지질학이야말로 그의 진화론의 거대한 배경이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p.109)

포용력이 크고 융통성이 있으며 단순한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범인의 기상을 가진 다윈의 모습(p.62)을 통해 처음 만났는데요. 가장 놀랍고 감동받았던 부분은 그가 노예제도를 증오하고 혐오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단지 이 이유만으로 휘그당을 지지했다니 그의 굳은 마음이란.

"만약 영국이 유럽에서 노예제도를 완전히 폐지하는 최초의 국가가 된다면 그것은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일까?"

"1836년 8월 19일에 마침내 우리는 브라질 해안을 떠났다. 노예의 나라에 두 번 다시 방문할 일이 없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비록 다윈이 정치적 견해의 모순과 사상의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하더라도 학대당하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노예 해방에 대한 열정, 정의감 등을 가졌다는 부분은 높이 살만합니다. 당시의 배경과 그의 입지를 생각해보면 더욱 그러하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색인종을 부리고 학대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던 그 당시니까요.

이 책을 통해 찰스 다윈이라는 사람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간 것 같습니다. 지난번 이와나미 신서 중 하나인 허블에 대해 읽었을 때에도 허블이라는 사람에게 반했었어요. 정말 멋있는 사람이더군요. 다윈도 그렇습니다. 여기에 다 옮기지 못한 청년 다윈의 모습을 책에서 만나보셨으면 좋겠어요. 그가 얼마나 쾌활하고 명랑했으며 여자를 존중하고 사랑하며 아름다운 언어로 이야기했는지. 인간미가 있으며 진보적인 정신과 인도주의적인 모습 등을 볼 수 있거든요. 그런 청년이 항해와 연구를 통해 성장해 나가 우리가 알고 있는 위대한 학자 다윈이 된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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