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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운 빼앗는 사람, 내 인생에서 빼버리세요 - 적당히 베풀고 제대로 존중받기 위한 관계의 심리학
스테판 클레르제 지음, 이주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4월
평점 :
절판
'멘탈 뱀파이어'라는 단어를 보고 처음엔 킥킥댔습니다. 이것 참 기발한 표현이로군 하면서요. 그러나 책을 읽어나갈수록 웃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남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실은 그렇지 않았거든요. 저는 포식자에게 당해오던 희생자였던 겁니다. 사육당하는 가축은 자신이 사육당하는 줄도 모르고 원래 모두가 그렇게 사는 줄 알듯이 저도 그랬던 겁니다. 멘탈 뱀파이어에게 잘 길들여져 있었던 거죠. 이제야 제 무력함의 이유를 알겠더군요. 다행히 지금은 그 지배에서 많이 벗어나 멀쩡한 정신으로 지낼 때가 많아서 - 물론 업무상의 스트레스는 존재합니다만 - 괜찮지만 그동안 나는 왜 그토록 심한 고통을 받았는가를 깨달았습니다.
만나고 나면 기운이 쪽 빠지는 그런 사람, 이야기를 듣기만 했는데도 모든 기력이 소진되는 그런 사람, 뭐라 할 수 없는데 짜증이 나는 사람, 폭력을 쓰는 것도 아닌데 괜히 눈치를 보게 되는 사람... 그런 사람이 곁에 있다면 멘탈 뱀파이어의 먹이가 되는 중입니다. 혹시 제대로 존중받지 못하고 있는 기분이 드신다면 더 확실하고요. 그들은 우리를 뭐 어떻게 해하려는 의도가 있다기보다는 상대를 깎아내리거나 상처를 주면서 무너지는 멘탈을 섭취함으로써 자신의 활력소로, 양분으로 삼는 겁니다. 어쩌면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인데'로 시작할 수도 있고, '내가 말이야.. 요즘...'으로 시작할 수도 있어요. 나를 깎아내리지 않더라도 내 말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의 이야기만을 떠들어대는 타입도 있죠. 자신의 말만이 옳다고 하는 타입도 있고요. 나의 자존감을 깎아내리고 부정적인 말을 늘어놓기도 합니다. 여러 가지 타입이 있지만 결국 내 정신 건강을 해롭게 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들 모두가 멘탈 뱀파이어에요. 그들은 내 멘탈을 섭취함으로써 우위에 서있는 것 같지만, 실은 내 멘탈에 의존하고 있는, 혹은 기생하는 기생충 같은 사람입니다. 기생충은 너무했나요? 거머리라고 정정하겠습니다.
내가 이 책에서 집중적으로 다루는 것은 한 사람은 멘탈 뱀파이어가 되고, 또 한 사람은 숙주가 되는 관계다. 이 책에서는 멘탈 뱀파이어가 숙주인 상대방의 기를 빨아먹는 다양한 사례를 다룰 것이다. 이런 관계에서 멘탈 뱀파이어는 힘을 얻지만 숙주인 상대방은 기운이 빠진다. 장기간 반복적으로 기를 빨리면 숙주가 되는 상대방은 더욱 큰 피해를 받는다. 피해자는 스트레스에 시달려 남은 기운도 잃게 된다.
멘탈 뱀파이어와의 관계가 직장이거나 차라리 친구, 지인 관계라면 어떻게든 헤쳐나갈 길이 있겠습니다만, 제일 나쁜 경우는 멘탈 뱀파이어가 부모인 경우입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방법대로 관계를 끊으면 좋겠지만 부모 자식 간은 천륜이라 끊어내기가 보통 힘든 게 아닙니다. 간신히 끊고 살다 보면 또 다른 멘탈 뱀파이어가 사정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래도 그러는 게 아니라며 자신을 파렴치한 사람으로 몰아가며 멘탈을 쪽쪽 빨아먹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또 다른 자의 먹잇감이 되는 거죠.
멘탈 뱀파이어는 원하는 것이 있으면(애정, 물질, 위로, 유용한 정보, 정신, 육체) 상대에게 관심을 받고 감정적으로 공감을 얻기 위해 머리를 쓴다. 정작 당신은 그에게 기가 빨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심지어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원래 성격이 나약하고 몸도 쉽게 피곤해지는 스타일이라서 감정적이 되고 초조해진 것뿐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저도 몰랐어요. 떠오르는 멘탈 뱀파이어가 - 인생에서 굵직한 뱀파이어만 다섯이더군요. 그중 가장 큰 둘 중 하나는 저한테만 그러고, 또 하나는 많은 사람에게 그렇게 행동합니다. 후자는 포식자 형태의 멘탈 뱀파이어인데요. 문제는 요즘도 그 둘 중 하나라도 만나고 온 날이면 기력이 완전 쇠진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맙니다. 되돌아보니 저는 멘탈 뱀파이어들의 표적이었습니다. 인생에서 커다란 놈들에게 많이도 당했더라구요. 그러다 보니 이렇게 나 스스로를 가두는 방법으로 자신을 보호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 당하면 정신적으로 피곤하기도 하고 신체에도 이상 반응이 온다. 가장 많이 찾아오는 증상은 두통이고 그다음이 소화불량, 배뇨 욕구, 긴장, 호흡 장애, 흥분이다. 이러한 증상은 단독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함께 나타나기도 한다.
멘탈 뱀파이어와 함께 있으면 정신적으로든, 감정적으로든 행복하거나 힘이 나거나 충만한 기분이 거의 들지 않는다. 그보다는 피곤하고 우울하고 의기소침하고 긴장되고 혼란스럽고 불안하고 탈진된 기분, 나아가 힘이 쫙 빠지는 기분이 든다.
멘탈 뱀파이어들의 먹이가 되어왔던 저를 느끼며 책을 읽다가 문득, 혹시 나도 누군가의 멘탈 뱀파이어 인건 아닌가 염려가 되기 시작했는데요. 왜냐하면 멘탈 뱀파이어들의 대부분이 자신이 그런 존재라는 걸 모를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저도 일종의 멘탈 뱀파이어인 것 같았어요. 그것도 내 아이에게. 실제 사례를 읽다 보니 그렇게 느껴졌어요. 과도한 애착으로 인한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저라서 아이에게 사랑을 과하게 주다 보니 약간의 문제가 생겼더군요. 주의가 필요했습니다. 조금씩 노력해야겠죠. 아이를 또 다른 멘탈 뱀파이어로 키울 수는 없으니까요.
호구라고 불리는 멘탈 뱀파이어의 먹이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이 책의 후반부에 있습니다. 무려 18가지나 되는데요. 실천은 무척 어려울 것 같아요. 하지만 건강한 멘탈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은 해봐야겠죠. 잘라 낼 수 있는 관계라면 관계를 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시크하게 이겨 낼 방법을 궁리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저와 같은 유리멘탈 동지들이여!!
힘을 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