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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당신들 ㅣ 베어타운 3부작 2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월
평점 :
<베어타운>은 예고편, <우리와 당신들>이 본편인 것 같습니다. <베어타운>의 뒤표지에 적혀있던 희망을 <우리와 당신들>에서 찾았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하키밖에 모르는, 하키만이 정의로운 세상인 베어타운에서 스타플레이어 케빈이 성폭행을 저지릅니다. 사람들은 가해자인 케빈이 하키 결승전에 나가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인 마야를 비난합니다. 무혐의로 풀려나긴 했지만 마야의 복수로 어둠을 두려워하는 남자가 된 케빈이 <우리와 당신들>편에서 마을을 떠납니다. 케빈의 어머니는 케빈을 용서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버리지 않을 거라고 말합니다. 그가 마을을 떠나는 것으로 마을이 평화를 찾을 거라 생각했다면 착각입니다. 팀 코치였던 다비드가 유력 선수들을 데리고 상대편인 헤드로 떠납니다. 어제까지 적으로 간주하며 비난했던 헤드의 일원이 된 선수들은 역시 하키밖에 모르는 바보라 이번엔 베어타운을 비난합니다.
게다가 베어타운 하키단 단장이자 마야의 아빠인 페테르, 가족을 위해 자신의 꿈을 내려놓은 엄마 미라에게도 괴롭힘이 시작됩니다. 유치하지만 치명적인 괴롭힘입니다. 마을을 떠나라는 노골적인 표현에다가 부고란에 부고 기사까지 띄웁니다.
케빈이 망가뜨린 사람은 그녀였다. 하지만 무너진 사람은 그들이었다. (p.322)
그리고 세상의 모든 규칙과는 별개로 움직이는 것 같은, 하지만 나름대로의 법이 있는 스포츠에 정치가 끼어듭니다. 덕분에 팀은 살아나고 아이들도 살아나니 다행일까요. 새로운 베어타운 팀을 꾸리려는 정치인의 숨결 덕에 페테르가 바빠집니다. 하키는 그의 전부인데 또 하나의 전부인 딸의 사건으로 팀이 해체되려 하는 걸 막을 수 없었던 그는, 좌절에서 일어나지만 과연 이것이 옳은 일인지 끊임없이 갈등합니다.
어둠을 딛고 일어나는 마야의 싸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케빈은 그녀를 부쉈지만 그녀의 모든 것을 부술 수는 없었습니다. 케빈의 절친 벤이는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비드와 함께 헤드로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의지도 있었겠지만 그가 게이라는 걸 알아챈 다비드가 그를 포기 한 사실도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새로운 베어타운에서 그는 뛸 수 있었습니다. 첫인상이 스카이캐슬의 김주영쓰앵님 같은 느낌이었던 사켈 코치는 볼수록 매력적입니다. 카리스마 넘치고 중립적인 데다 강한 모습에 반할 것 같습니다.
조금 불편하지만 그냥 이대로 잘 될 것만 같았습니다. 마야의 부모님이 위태로워도, 누나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동생 레오의 행동을 보면서도 어떻게든 잘 되겠지... 하며 기대를 했습니다. 벤이의 성 정체성이 들통나 소문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요. 그의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간 순간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넌 그러면 안 되지!!
너도 이 마을의 다른 사람들이랑 똑같아. 네가 원하는 걸 갖지 못하면 남한테 상처를 줘도 된다고 생각하지.
-p.397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자살 직전까지 갔던 벤이가 마야에게 그 일을 어떻게 견뎌냈냐고, 무슨 수로 버텨냈냐고 물었을 때, 마야의 대답은 정말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눈물이 핑 돌았거든요.
나는 피해자가 아니에요. 나는 생존자에요.
-p.523
그리고 벤이도 생존자가 됩니다.
우리나라 십 대들이 거칠다거나 욕을 입에 달고 산다고 어른들이 뭐라 해도, 소설 속 아이들 모습이 만약 현실과 가깝다면, 우리나라 아이들은 참 순한 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저런가요? 입에 담지 못할 욕들을 하고, 남을 심하게 상처 주고... 저런 아이들이 자라서 보통의 어른이 되는 건가요? 헤드의 아이들이나 베어타운의 아이들이나 특히 남자아이들에게는 적응하지 못하겠습니다. 저렇게 폭력적이라니.
이들의 삶은 스릴러입니다. 우리의 삶도 스릴러일지 몰라도 일상이 스릴러라니 너무 힘겹습니다.
<우리와 당신들>은 속상하고 마음 아프고 괴로운 소설입니다. 그럼에도 희망으로 나아가려 합니다. 패배하기도 하고 부서지기도 합니다. 그래도 일어나는 것이 삶과 같습니다. 이 책은 전작을 읽지 않아도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읽은 사람은 배경을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에 더 깊게 읽을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