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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 있는 모든 순간
톰 말름퀴스트 지음, 김승욱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12월
평점 :
카렌이 독감 혹은 폐렴일 거라 의심되어 병원에 입원할 때에 이미 짐작했습니다. 이것이 그녀의 삶 마지막 즈음이라는걸요. <우리가 살아 있는 모든 순간>은 작가의 자전적 소설로, 작가는 아내를 떠나보내고 홀로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소설은 이렇게 시작되고, 그녀는 이렇게 끝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출산을 한 달 반 앞둔 카렌이 고열과 호흡곤란으로 실려가 치료받는 동시에 모체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긴급히 제왕절개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요. 아이는 건강하지만 미숙아이므로 인큐베이터로 들어갑니다. 카렌은 급성 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하루하루 죽어갑니다.
아기가 태어날 때까지만 해도 희망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호흡기를 착용하긴 했어도 그녀는 의사표현을 할 수 있었거든요. 병실로 찾아온 부모님을 만났을 때 도요. 그래서 저는 이야기가 좀 진행되다가 아이가 두어 살쯤 되었을 때 죽는 건가 했습니다. 그런 거 있잖아요. 병상에서의 결혼식이라거나...
소설이나 영화에서 보여주는 죽기까지의 잔잔한 슬픔, 아이를 품에 안고서 내가 계속 이 아이를 지켜야 하는데... 같은 마음 아픈 넋두리를 들려줄새도 없이 그녀는 누구에게도 작별 인사를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그렇게 떠나버립니다.
병실의 아내와 딸에게 향하는 엄청난 양의 사랑을 지켜보던 저는 갑작스러운 죽음에 말문이 턱 막혀버렸습니다. 이렇게나 빨리 가 버릴 줄은 몰랐는데....
작가의 문장에는 따옴표가 없습니다. 수많은 대화가 오고 가는데도 단 한 개의 따옴표나 인용부호가 없어 마치 톰에게서 직접 이야기를 듣는 것 같습니다. 그의 감정이 직접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와 함께 슬퍼하고 함께 분노합니다. 그리고 함께 후회합니다. 하지만 후회를 오래 할 수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딸을 지켜야 하니까요.
카렌의 죽음이 기록되는 장면 전까지만 하더라도 저는 조금 덤덤했습니다. 아내와 인큐베이터의 딸 사이를 오가느라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을 뿐. 하지만 몇 개월 전으로 돌아가 둘의 행복했던 시간을 비출 때, 비로소 카렌이 생생하게 살아있던 존재라는 걸 느끼고 잔잔한 충격이 가슴에 전해졌습니다. 둘은 여느 커플과 마찬가지로 사랑했고, 다투기도 했고 생활에 부딪히기도 했습니다. 곧 태어날 아이에게 엉뚱한 노래를 들려주기도 하고 미쳐 하지 못했던 결혼도 하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랬던 것이 어느 날 끝나버린 겁니다.
우리가 그렇듯, 그런 날이 이렇게 갑자기 자신에게 닥칠 줄 몰랐던 거죠.
그의 문장은 과장도 없고, 쓸데없는 감성적인 묘사조차 없습니다. 작가가 원래 시인이라는 걸 감안해보면 이렇게 건조한 문장으로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독자를 대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느낍니다. 자신의 슬픔과 고통의 감정을 마치 르포 기사를 쓰듯 활자로 옮겨두었습니다. 그 문장을 따라가며 독자는 직접 감정을 느낍니다. 그리고 우리가 겪고 있는 이 모든 삶이 우리가 살아있는 이유 그 자체라는 걸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