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게 (반양장) - 기시미 이치로의 다시 살아갈 용기에 대하여
기시미 이치로 지음, 전경아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아이가 어릴 때, 언젠간 엄마가 늙고 그러면 죽는다는 생각에 공포를 심하게 느꼈었습니다. 허구한 날 엄마 죽으면 안 돼. 늙으면 안 돼...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절대 늙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이를 먹어가며 몸이 여기저기 아프다고 신호를 보내도 진통제나 진경제 같은 걸 먹어가며 일시적인 현상이라 스스로를 속였습니다. 심지어 건강보험공단에서 실시하는 기본적인 건강검진도 받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나는 건강하니까요. 쌩쌩하니까요. 하지만 한계에 도달했나 봅니다. 
몸의 모든 곳이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습니다. 소화기계, 순환기계, 근골격계 할 것 없이 말이에요. 의사 선생님께서 꾸준히 약물 복용하며 생활습관을 개선해나가면 좋아지는 방향으로 갈 수 있을 거라 말씀하셨는데요. 다행이긴 한데 충격이 좀 크더군요. 내가 이렇게 늙어가는 건가.
거울 속의 저는 어느새 미간에 세로줄이 패인 중년이더군요. 영원히 젊게 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막상 스스로의 상태를 인지하고 나니 좀 우울하고 슬펐습니다. 

기시미 이치로의 <마흔에게>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건강과 행복은 말하자면 공기와 같은 겁니다. 잃어버리고 나서야 '그것들 덕에 살 수 있었구나.'하고 알게 됩니다. 그때까지 행복을 의식하지 않았던 사람도, 불행하다고 느끼던 사람도 병에 걸리면 어제까지 행복했다는 것을 '통감'하게 됩니다.

-p.68


어제까지 누렸던 행복이 이제 멈춰버린 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조금 힘이 났습니다. 기시미 이치로는, 인생은 마라톤이 아니다, 춤과 같은 것이라서 순간순간 즐겁게 지내는 것을 권합니다. 마라톤은 목표가 있어 도달해야 하는 곳이 있지만 춤은 어딘가에 도달하기 위해 추는 게 아니니 인생을 춤처럼 살아가라 이야기합니다. 

저자가 나이 오십에 뜻밖의 병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나이 듦'에 관해 쓴 책 <마흔에게>가 내 나이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저에게 부드럽게 충고합니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노화를 퇴화라고 보지 말고 변화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계절이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바뀌더라도 각각의 계절마다 특성이 있기에 다른 계절과 우월을 가릴 수 없다고 - 노년의 삶은 청년의 삶과 비교할 대상도 아니고 결코 뒤떨어지는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p.6-7)

마흔이라는 생애 전환기에서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 것도 나약함의 표현이라는 걸 왜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까요. 새로운 계절 - 아마도 가을을 맞아 높고 푸른 하늘과 부드러운 바람, 알록달록한 단풍과 좀 더 짙어진 색의 바다에서 밀려오는 파도를 보며 이 순간도 행복하게 누릴 수 있다는 걸 미쳐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나무가 낙엽을 떨구며 겨울을 준비하듯이 저도 머리에 하얀 눈이 내리는 겨울을 준비해야겠죠.

기시미 이치로의 <마흔에게>는 중년부터 병든 노년의 삶도, 건강한 노년의 삶도 소중히 살아갈 것을 이야기합니다. 
병든 몸으로 삶에 강한 집착을 갖는 게 혹시 자녀나 배우자에게 짐이 되지 않을까 하여 미안해하는 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가족들이 힘을 합치고 모일 기회를 주는 것이므로 살아있는 것 자체를 기쁘게 생각해도 좋다고 합니다. 제가 딸의 입장에서는 위의 말에 동의하지만 엄마의 입장에서는 미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그가 그리 생각하지 말라고 하더라도. 
그러므로 겨울이 오기 전의 이 가을을 즐겁고 건강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을에 다람쥐가 겨울 양식을 대비하듯, 곰이 겨울잠을 준비하듯, 저도 저의 겨울을 준비하며 이 가을을 느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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