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사회력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27
가도와키 아쓰시 지음, 김수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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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은 아이가 책에 대해 대화하고 싶어 하길래 저도 급하게 읽어보았습니다. 워낙 빠르게 읽어서 자세한 내용을 습득하지는 못했고 대략의 내용만 파악했는데요. 
유전자는 자신이 지니고 있는 것들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 번식해나가 후대로 이어가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기 때문에 이기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원시 수프 속 DNA로서의 우리는 그러했으며 그것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상호 교류를 통하여 사회적 동물로서 살고자 합니다. 이타성이 있다는 것인데요. 박애주의자나 순간적인 행동으로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그런 분들을 따로 모셔두고서 보통의 우리를 두고 생각해보아도 때로는 이기적으로, 때로는 이타적으로 행동합니다. 유전자의 명령을 거부하는 셈인지도 모르지만 학습에 의해서건 본능에 의해서건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결국엔 무리 전체의 유전자 보호를 위해 더 좋은 결과를 낳는다면 이기적 유전자 법칙에 의해서 이타적 행동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또한 호혜적 이타행동을 하기도 하는데요. 호혜적 이타행동이란 혈연관계가 없는 사람들 사이라도 훗날 상대방이 갚아줄 가능성만 있다면 자신의 이익을 희생해서라도 다른 누군가의 이익이 될 일을 기꺼이 해주는 인간의 행동을 말합니다.(p.89) 다른 동물에게서도 간혹 보이기도 하지만 인간에게서 종종 관찰되는 이런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타자를 인식하는 능력이나 타자에 대한 공감능력, 감정 이입 능력이 있어야 가능한데요. 이는 사회력의 기반이 됩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사회력'의 최초 훈련은 주 양육자의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책에서는 엄마와의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되어있지만 엄밀히 말해 '주 양육자'가 될 것입니다. 책 후반에서는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 언급해두었고 아버지의 부재에 대한 부작용도 잠깐 이야기합니다만, 어쨌든 이 책이 쓰인 당시 일본의 가정에서는 주 양육자가 엄마였나 봅니다.(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았겠지만요.) 지금에 와서는 다양한 형태의 가정이 있으므로 아기와 엄마의 커뮤니케이션이라기보다는 주 양육자와의 그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주 양육자와 아이와 쌍방 소통이 끊임없이 부지런히 이루어져야 앞서 말한 것들 - 타자 인식, 공감능력, 감정 이입 능력 - 이 자라납니다. 

요즘 마트나 아파트 단지에서나 서너 살 된 아이들이 부모에게 말을 걸거나 질문하는 걸 자주 봅니다. 그런데 엄마나 아빠를 부르는데도 대꾸하지 않는 부모가 흔합니다. 대답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던가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어렵다 하더라도 부모를 부를 때 "응? 왜?" 이 한마디 하는 게 뭐가 그리 힘들다고 아이가 서너 번씩 불러도 한 번 대꾸를 안 합니다. 현대의 아이들은 기본적인 커뮤니케이션도 못하고 자신의 요구에 즉각 반응하는 스마트폰만 붙잡고 있는 셈입니다. 엄마 아빠는 대답해주지 않아도 스마트폰은 바로 대답해주거든요. 

이 책에서 말하는 사회력은 사회성과는 다릅니다. 

사회성의 개념이 실제로 있는 사회 측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에 반해, 사회력이라는 새로운 개념은 사회를 만드는 인간 측에 역점을 둔 개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회성이 기존 사회에 대한 적응을 메인으로 하고 그 사회의 유지를 지향하는 개념이라면 사회력은 기존에 있는 사회의 혁신을 지향하는 개념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지금 어린이들이나 젊은이들의 사회성 부족이 지적되고 있지만, 필자의 시작에서 보면 젊은 세대에게 부족한 것은 '사회성'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력'이다. 좀 더 나아가자면, 사회력이 결여되어 있는 것은 비단 젋은 세대만이 아니다. 기성세대인 어른에게도 상당히 결여되어 있는 것이 현 상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p.99

양육자가 올바른 태도로 아이의 사회력을 길러주는 것 - 가능하면 태교부터 전 성장과정에서 올바르게 적용되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죠.-이 무척 중요하며 이는 아이가 자라나 세상을 살아갈 때 어떻게 사회생활을 하는가 결정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모두가 환경요인에 적용받는다고는 감히 말할 수 없지만 좋지 못한 길로 빠지는 청소년이나 성인 중에선 제대로 된 사회력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이 많으므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점에는 크게 동의합니다. 사회력을 갖춘 아이가 사회력을 갖춘 어른이 되는 법이니까요. 사회력은 타자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데 있으므로 아이의 사회력을 배양하는 것에 힘써야 합니다. 주 양육자 뿐만 아니라 주위에서도 말이에요.

실은 저도 가능하다면 사람과의 접촉을 피하고 있어서 사회력이 좋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제가 누굴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아이에게 옳고 그름을 가르치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커뮤니케이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다소 폐쇄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애써 천성이라고 우기고 싶지만, 어쩐지 후천적으로 학습된 것인 것 같아서 미안하며 안타깝습니다. 타인과의 교류는 어색하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므로 고통스러운 감정노동이라고 종종 느끼는 저에게서 새어나간 그 무엇이 아이를 물들인 것 같아 속상합니다. 
어쩌면 '단절'이나 '비사회적'이라고 보이는 형태도 실은 새로운 사회와 커뮤니티를 형성해가는 과정일 뿐인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처럼 불편한 인간관계는 피하는 사람도 집 밖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일처리를 할 때는 숨어들지는 않거든요. 혹시 <편의점 인간>처럼 매뉴얼화해서 응대하고 행동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만, 그건 그것대로 슬프면서 행복하군요.

글 쓰면서도 머릿속이 복잡합니다. 아이의 사회력을 기르는 것은 분명 주 양육자의 태도에 따라 좌우됩니다. 그러나 주 양육자가 자신의 감정을 삭이며 무리하여 시행한다면 그것 또한 전달될 텐데 어쩌면 좋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음. 우선 자신의 태도와 사회력을 먼저 돌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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