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의 세계사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46
모모이 지로 지음, 김효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AK커뮤니케이션즈의 책을 여러 번 접해보았지만 트라비아 시리즈는 처음입니다. 간간이 올라오는 신간 소식을 보면서도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거든요. 그도 그럴 것이 소수의 특정층을 겨냥한 것 같은 제목에 저는 그 대상자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세계의 보병 장비>,<세계의 군복>, <도해 첩보, 정찰 장비> 같은 책들이었으니 무리도 아니죠. (<영국 집사의 일상>이라거나 스페셜의 <중 2병 사전> 같은 건 조금 호기심이 생겼었지만요.)
책날개의 트라비아 시리즈 소개를 보면, 트라비아란(Travia) 잡동사니 정보나 잡학적 지식을 말한다고 합니다. 흔히 오타쿠라는 통칭으로 불리는 이들을 중심으로 생산/소비되는 서브 컬처적 지식 같은 걸 말한다고 하는데요. AK커뮤니케이션즈에서 발행하는 트라비아 시리즈는 비주류이지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주제에 무게를 두고 출판한다고 합니다. 궁금한 주제에 대해 나무위키나 유투브등을 통해 지식을 얻을 수 있지만 전문가가 저술한 책을 통해 해소할 수 있는 지적 호기심의 맛은 다를 겁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더라도 자신이 직접 읽어보기 전엔 느낄 수 없습니다. 워낙 주제가 다양하니 입맛에 맞는 책을 골라 읽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을 거예요. 저도 이 책 <해적의 세계사>를 읽기 전에는 이곳이 맛 집인 걸 몰랐거든요.
<해적의 세계사>는 매끄러운 번역과 도해로 아주 쉽게 세계사를 접할 수 있게 편집되어 있었습니다. 학창시절 지리나 세계사 과목의 점수는 좋지 않았지만 지도를 보는 것만은 좋아했는데요. 그 지도를 눈으로 좇으며 따라 그려보는 것도 좋아했기에 이 책에 수록된 지도가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해적의 세계사>는 고대 그리스의 해적부터 시작하여 현대 소말리아의 해적에 이르기까지 바다를 누비던 - 나아가 육지까지 점령한 해적의 역사를 시간의 흐름 순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인터넷 웃긴 글에서 읽었던 짧은 글이 생각납니다. 몇 년간 유니세프 같은 곳을 통해 정기 후원을 했던 소말리아 어린이가 자라서 직장을 구했다고 편지를 보냈다는 이야기인데요. 그 직장이 소말리아 해적이었다나. 우스개였으면 좋겠는데 실화일지도 모릅니다. 슬픈 이야기죠.
해적은 예로부터 전 세계 곳곳에 있어왔습니다만, 이 책에서는 서양의 해적만을 다룹니다. 그리스의 해적, 고대 로마 해적, 무슬림 해적 등... 서두에서 동양의 해적을 다루지 않았음에 양해를 구하고 있습니다. 
저는 학생 때 짐과 실버가 활약하는 스티븐슨의 보물섬을 좋아했습니다. 특히 실버의 매력에 퐁당 빠졌었는데요. 지금은 왜 그랬을까 이해가 잘 안됩니다. 해적은 엄연히 범죄자이거늘. 반해서 어쩌자는 건가요. 어려서 뭘 몰라 나쁜 남자가 좋았나 봅니다. 해적은 범죄자, 약탈자, 파괴자입니다..... 분명 그러한 거였는데, 맞는데... 이 책을 읽다 보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해적은 약탈자 일 수도 있고, 위대한 정복자 일 수도 있습니다. 


(붙잡힌 해적이 알렉산드로스 대왕 앞에 끌려왔다) 대왕이 해적에게 '어찌하여 바다를 어지럽히는가'라고 묻자 해적은 겁먹은 기색도 없이 대답했다. '폐하가 전 세계를 어지럽히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단지 나는 작은 배 한 척으로 그런 일을 하는 까닭에 도적이라 불리고 폐하는 대함대를 거느리고 그런 일을 하는 까닭에 황제라 불리는 것뿐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신국론]중에서) 
-p.19



초반에 놓인 이 인용구를 읽고 갑자기 뭔가가 깨지는 것 같았습니다. 마을을 약탈하고 노예를 취하여 내다 팔았던 해적은 범죄자이고, 함대를 몰고 가서 타국을 침략한 이들은 정복자라고 생각한 내 생각이 잘 못 되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런 것을 깨달은 후 책을 읽기 시작하니 여러 가지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악명 높았던 해적 프랜시스 드레이크는 마젤란 이후 세계를 두 번째로 일주한 사나이가 되고, 영국 여왕에게 막대한 부를 안겨주었다는 이유로 교수형은커녕 기사 작위까지 내립니다. 역시 예나 지금이나 하려면 크게 해야 하나 봅니다. 
책의 초반에선 해적질이 상당히 나쁜 것이라는 쪽과 그래도 바이킹- 노르만의 이동을 생각해보면 역사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부분이 아니었나 하는 쪽, 심지어 반드시 있어야만 했다는 쪽의 생각이 뒤엉켜 좀 답답했습니다만, 역사의 한 부분이다 그러니 읽고 알아두자, 다만 지금은 없어져야 할 악이다...라고 결론 내리고 나니 후반부는 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실은 윌리엄 키드라거나 멋진 여성 해적 - 마치 영화나 소설 같은 인생이 매력적이었기에 더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파나마의 뉴프로비던스(영국령)에 버커니어(해적)들이 모여들어 거래도 하고 쉬었다 가기도 하는 장면에서는 캐러비안 해적이 떠올랐습니다. 실제로 당시가 카리브 해적의 황금기였다고 하고요. 

해적이 등장하는 영화나 애니메이션, 게임 등을 즐기는 독자라면 이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약간의 호기심만을 지녔던 제가 이렇게 재미있게 읽은 걸 보면요. 바닷가의 커피숍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종려나무를 보며 읽었더니 더 즐거웠습니다. 여름휴가지에 함께 할 책으로 추천해 볼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