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얼티
스콧 버그스트롬 지음, 송섬별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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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개봉한 플라이트 플랜에서는 카일 플랫(조디 포스터)이 운행 중인 비행기 안에서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딸을 찾는 시련을 겪습니다. 2008년 이후 테이큰의 브라이언 밀스(리암 니슨)은 납치된 딸을 찾는 사투를 벌입니다. 사랑하는 아이를 누군가가 납치한다면 세상 어떤 부모라도 조디 포스터나 리암 니슨이 되는 걸 꺼리지 않을 겁니다. 김명민은 하루(2017)에서 딸을 구하기 위해 몇 번이고 같은 시간을 살지 않나요.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요? 위험에 처한 부모님을 구하기 위해 사지로 달려가는 청소년이라니. 고작해야 집 안에서 울고만 있을 것 같은 - 조금 더 강한 아이라면 경찰 같은 기관에 하루빨리 구해 주길 당부하며 신께 간절히 기도할 것 같은데요. 

스콧 버그스트롬의 <크루얼티>에 등장하는 그웬돌린은 그런 보통의 아이들과 달랐습니다. 아니,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보통의 청소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불의에 굴하지는 않지만 세련되게 대응하는 법은 잘 모르는 평범한 소녀였죠. 군인이었던 엄마의 죽음을 목격한 일곱 살 이후로 아빠와 단둘이 살아왔던 소녀에게 그림자가 없다면 이상한 일일 테지만, 학교에서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것과는 별개로 아빠와의 사랑으로 심지 굳은 소녀로서 잘 커나가고 있었습니다. 엄마의 재혼상대였기에 그웬돌린과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관계였어도 누구보다도 강한 부녀의 정으로 연결되어 있는 사이였습니다. 외교 행정관으로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살아야 하는 불편이 있음에도 큰 불평하지 않고 지내왔습니다. 덕분에 외국어만큼은 현지인처럼 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니었겠죠. 
그러던 어느 날, 파리로 출장 간 아빠가 실종되었습니다. 

그리고 알게 된 사실. 아빠는 사실 외교 행정관이 아니라 CIA 요원이었던 겁니다. 파리에서 작전 중 갑자기 연락을 끊고 사라져버렸는데요. CIA 측에서는 해외 비밀 계좌를 가지고 있던 그가 잠적했다고 생각하는데, 그웬돌린은 믿을 수 없습니다. 자기를 버리고 사라져버릴 아빠가 아니었거든요. 잠적이 아니라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겁니다. CIA에서는 그가 납치되었을 가능성을 버립니다. 어른들이 찾으려 하지 않으면, 자신이 직접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 그웬돌린은 썸남 테런스의 도움과 이웃 할아버지이지만 알고 보면 왕년의 스파이 벨라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파리로 날아갑니다. - 이모는 아이가 실종되었다고 생각하고 신고하는 바람에 그 동네에선 난리가 났지만요. - 파리에서 벨라 할아버지의 지인 야엘을 만나고, 야엘을 통해 두려움 없는 강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무슨 히어로 개조물이나 일본 만화처럼 그냥 뚝딱뚝딱, 우와 원래 이렇게 잠재된 능력이 있었던 건가! 하는 식으로 변화되는 건 아닙니다. 그웬돌린이 가지고 있던 건 균형 감각과 아빠를 되찾아야 한다는 강인한 마음 뿐이었거든요. 아무리 강한 마음을 먹는다 하더라도, 나였다면 그런 액션은 불가했겠지만, 그웬돌린은 됩니다. 왜냐. 주인공이니까요. 그리고 적어도 DNA의 반은 군인이었던 엄마의 것이니까요. 야엘을 통해 소피아라는 이름으로 러시아 국적의 여권을 얻은 그웬돌린은 파리에서 예상치 못했던 사건으로 야엘과 헤어지고, 그때부터 진짜 주인공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런 거 있잖아요. 액션, 스릴, 서스펜스, 위기, 해결, 다시 위기, 그리고 대 위기.

아빠와 딸의 위치만 바뀌었을 뿐 전반적으로 테이큰 같은 추격 액션 스릴러 미스터리... 그런 느낌이려니 하고 읽기 시작했지만, 제 예상보다는 좀 더 강했습니다. 다른 아이들과 좀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한다는 이유로 아웃사이더였던 그웬돌린이 아빠를 찾아야 한다는 목표 하나로 얼마나 강해질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을 지켜볼 수 있는 성장 소설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스릴러로서의 큰 줄기는 그대로 유지한 채로요. 
아름다운 도시, 낭만의 도시라고 생각했던 '파리','프라하','베를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소설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생각했던 그것과는 많이 다름을 느낍니다. 소설이라 어느 정도의 과장이 들어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소설 속의 그곳은 무척 어둡고 더러웠습니다. 마약과 폭력, 그리고 인신매매까지. 그런 흉한 곳에서 그웬돌린은 많은 소녀들을 만납니다. 구할 수 있는 소녀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소녀도 있었습니다. 슈퍼 히어로가 아니니 자신과 아빠만 구하면 되지 않나 싶은 장면도 꽤 많았습니다. 무언가 그웬돌린 안에서 흔들리고 변화한 게 분명합니다. 

<크루얼티>는 <캐리비안의 해적>의 제리 브룩하이머가 제작을 맡아 영화화한다고 합니다. 과연 누가 주연을 맡을까 기대됩니다. 스칼렛 요한슨 느낌의 배우였으면 좋겠는데요. 영화도 기대되지만, <크루얼티>의 후속작이 더 궁금합니다. 그렇잖아도 책을 덮으면서 후속작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크루얼티> 책 정보를 살펴보니 <그리드>라는 후속이 있더군요. 걸크러시의 그녀, 말 그대로 반해버렸어요. 다시 한 번 꼭 만나고 싶습니다. 영화에서도, 소설로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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