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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속나라 도둑 괴물 비룡소 전래동화 29
송언 글, 장선환 그림 / 비룡소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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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전래 동화는 전집도 있고, 어쩌다 간간히 한 권씩 사 모은 단행본도 있는데, 읽으면 모두 다 어디서 본 듯한 이야기인 건 전래동화라는 게 그렇듯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림 역시 다 뭔가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와서 다 읽고나서도 특별한 느낌을 받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데, 모처럼 책을 읽고 이쩅하니 다가 와서 글쓴이를 다시 들춰보기도 하고, 그림작가가 누군가를 다시 살펴 보게 되는 되는 책을 만났다.

 

 

<땅속 나라 도둑 괴물> - 송언 글, 장선환 그림

 

 

표지부터 봐라. 만만하지가 않다. 제목의 그 '땅속 나라 도둑 괴물'임이 분명한 괴물이 표지의 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목탄 느낌의 그림하며 생생한 표정들. 주인공이겠거니 미루어 짐작되는 한 청년은 그에 비해 아주 작은 사이즈로, 게다가 기둥 뒤에 반은 숨어 그려져 있다. 기세 등등한 괴물 얼굴에 비해 주눅이 든 듯한 표정. 이 두 주인공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세밀한 그림 좀 보게나. 정말 이야... 소리가 나오게 한다. 눈 덮힌 어느 겨울의 출정식 장면. 길거리 가게의 모습이며 사람들 표정까지. 꽉 채운 그림 어느 한 구석도 소홀히 그리지 않았다. 아이 책에서 이런 공들인 역작을 만나게 될 줄이야. 그냥 역사 책 한 페이지와 같은 부분도 있다. 일월오봉도 앞에 앉아 있는 임금님 모습은 공간 구성이며, 세밀한 묘사와 색감까지 그야말로 아름답다.

 

좋은 그림책 그림이란 건 지 혼자 잘 그린 거라기보다는 글의 내용을 잘 설명해주고, 또는 글에서 다 담을 수 없는 걸 상상하게 만들어주는 게 아닐까.'산신령이 황소만 한 호랑이를 타고 나타나 일러 주었지' 이 한 구절을 이 그림보다 더 잘 표현할 수는 없을 거다. 그림 그 자체로도 좋지만, 그림책의 그림으로 정말 좋다고 생각되었던 부분.

 

마지막에 총각이 호랑이를 타고 하늘을 나는 내용이 나오는 페이지는 이 책의 하이라이트 느낌. 배경 색의 색감하며 호랑이 날라가는 저 구도하며 우리 나라 심산유곡의 묘사와 함께 살펴 보면 나무 하나까지 세밀하게 그려 놓은 것이 정말 이 책 그림은 작품으로 해 놓았다 싶다.

 

워낙 그림이 우수하다보니 그림에 먼저 빠졌지만, 전래동화의 기본인 글 맛도 나쁘지 않다. 그대로 구연동화를 한다고 해도 흥미 있을 만큼 글의 맛이 팍팍 느껴지게 만드는 표현들이다. 아이도 그 자리에서 재미를 붙이며 읽어 치웠는데, 전래동화의 이야기 맛은 그대로 다 살아 있으면서 그림과 어우러져 산뜻한 분위기를 내는 책이다.

 

그냥 저냥 전래동화의 하나겠지 싶었는데 공을 많이 들인 그림에 미안해서라도 한번 더 펼쳐서 읽고 싶어진다. 자꾸 들쳐보게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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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았어, 나중에 할게! 좋은책어린이 창작동화 (저학년문고) 64
박혜숙 지음, 심윤정 그림 / 좋은책어린이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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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책어린이 저학년문고' 시리즈는 다른 출판사의 저학년용 문고본에 비하면, 판형이 좀 큰 형태이다. 그리고 표지가 마치 그림책을 보는 듯 단행본 느낌으로 디자인이 눈에 띄어 공을 많이 들였다는 인상을 준다.

'알았어, 나중에 할게!'라는 책의 제목은 초등학생 아이가 아니라, 엄마가 봤을 때 뜨끔하게 다가온다. 아이 뿐만 아니라 엄마도 입에 달고 사는 말이기도 하니. 이게 과연 아이의 이야기일까? 아니면 엄마의 이야기일까? 표지로 보면, 이건 아이의 이야기이다.

"조금만 이따가". 이 말의 주인공은 아이이다. 주인공 이름도 '오미루'. 만날 자기의 할 일을 '미루는' 아이라서 미루인가보다. 그런데, 이 아이의 말은 책을 읽는 엄마에게도 감정이입이 팍 된다. '조금만 이따가' 아.... 찔린다.

물론 그림 속의 엄마처럼 나도 입에서 불을 뿜는다. 늘 아이에게 '빨리빨리'라는 말을 뿜어 낸다. "입만 열면 빨리빨리! 빨리 일어나라, 빨리 숙제 해라, 빨리 씻어라, 빨리 자라...." 맞다. 하루에 아이를 상대로 하는 말 중에 '빨리빨리'를 빼고 말을 할 수가 있을까. 나 역시 하루에 몇 번이나 이 단어를 사용하는지 재어보고 싶은 기분이다. 

게으른 걸로, 늘 뭔가를 미루는 것 때문에 혼난 아이들은 게으름을 고쳐주는 학원에 모인다. "난 소파에서 뒹굴뒹굴하다가 끌려 나왔어." "난 숙제를 미루고 게임하다가 끌려왔어." 그리고 어떤 걸 미뤄봤는지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일기 쓰는 걸 미루다가 엄마한테 혼난 적이 있어요." "전 학습지를 제때 안 풀어서 선생님께 혼났어요." "이 세상에 재미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요. 재미있는 거 먼저 하는 게 잘못은 아니잖아요." 아이들의 말이 아이들의 말로만은 느껴지지 않는다.

가장 미루고 싶은 것에 대한 이야기도 나눈다. "전 먹는 게 제일 귀찮아요." "저는 날마다 학습지 푸는 거요!" "책상 정리하는 거요!" "씻는 거요!" 아이들 맘은 사실 어른 맘. 어른도 그렇다. 이렇지 않은 어른이 과연 많을까? 매일 '빨리빨리'를 입에 붙여서 아이에게 쏟아 붓는 엄마도 마음 속에는 '미루기 대장'이 살아 있다.

"치우려고 했는데 엄마거 먼저 치웠잖아." "일기 쓰려고 하는데 엄마가 심부름을 시켰잖아." "조금 이따가 하려고 했단 말이야." 아이들의 마음 속에 살고 있는 '핑계 대장'은 어른의 마음 속에도 있다. 그 중에 최고는, '나는 아이에게 화를 내고 싶지 않았는데, 아이가 그렇게 안 만들잖아요.'가 아닐려나. 미루고 핑계대는 것에 익숙한 아이의 마음 속을 잘 살펴 본 듯한 이 책.

아이도, 자기가 자주 하는 버릇과 핑계가 책에 나오자 마치 본인의 마음이 들킨 듯 웃었다. 그런데, 사실 마음 속이 들킨 건 엄마였다. 나도 그러면서, 나도 늘 그러면서, 아니 더 하면서, 아이에게만 재촉하고 다그치고 있구나. 아이들의 눈을 통해 본 엄마의 모습을 보며 엄마의 마음은 콕 찔렸는데, 아이는 엄마보다는 좀 덜 한 것 같다.

역시 함께 제공받은 활동지를 통해 아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돌아 봤는데, 이야기의 마무리가 산뜻하지는 않다고 할까. 뭔가 명쾌하게 떨어지지는 않기는 하다. 이야기를 시작한 동기와, 그 안의 세밀한 묘사들, 특히 생동감 있는 대사 표현이 좋았던 만큼 마지막 장을 덮으며, 아이가 아하! 할 수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은 아쉬움.

아무리 엄마 마음에 와 닿았다고 해도, 결국 이 책은 아이 책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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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라노 딱지와 삼총사 좋은책어린이 창작동화 (저학년문고) 66
신채연 지음, 김효주 그림 / 좋은책어린이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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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맘을 알아주는 책은, 아이가 먼저 알아보는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을 아이 앞에 내 놓았더니, 표지만 보고서도 책으로 달려든다. 그도 그럴듯이 아이가 좋아하는, 공룡! 딱지! 친구! 이 모든 키워드가 제목에 이미 딱 나와 있기 때문이다.
 
제목만 봐도 흥겹다. 공룡과 딱지로 책 제목을 만든 것부터가 발랄하다. 공룡을 타고, 거기에 메달려 있는 아이들 표정도 신 난다. 거기에 딱지치기와 쿠폰 이야기. 동네 치킨집의 쿠폰 모으기에 열성을 보이고, 태권도장의 포인트를 열심히 모으고 있는 아이는, 더 주저할 것 없이 책을 집어 들었다.
 
공룡들의 특색을 잘 표현하고, 아이들의 취향을 그에 맞춰 잘 나타내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아이들이 좋아하는 걸 세밀하게 관찰하지 않으면, 쉽게 나올 수 없는 정성이다. 아이들의 쿠폰 모으기 삼매경도 잘 묘사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태권도장은 모두 이런 식인지 모르겠지만) 마침 아이가 다니는 태권도장에서도 포인트 쿠폰을 운영하고 있어, 아이는 자기 이야기인 것처럼 빠져 들어 읽었다. 

책 속의 아이 아이 이야기, "이제 일곱 개만 모으면 돼!"  아이들에겐 이제 열 개, 이제 일곱 개, 이제 세 개....  이렇게 저 앞에 보이는 쿠폰 고지를 향해 달려 가게 만드나 보다. 아이들의 노력 증진을 위해 쿠폰이 효과적일 수 밖에 없는 어떤 포인트를 집어준 듯 하다. 그렇게 공룡을 좋아하는 아이들의 쿠폰 애착을, 친구들끼리의 서로 갈등과 함께 나타낸 이 책. 아이들이 좋아하는 관심사도, 아이들이 빠져 있는 부분도, 그리고 아이들답게 그걸 겪어내고 받아들이는 것도, 자연스럽게 잘 묘사되어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어른이 하고 싶은 얘기는? 분식집 아줌마를 통해 대신 들려주고 있다. "왜 쿠폰을 가지고 딱지치기는 혀서 이 사달을 만들어?  (중략) 참된 아이, 멋진 아이 되라고 참멋이잖여.  (중략) 노력 안 허고 생기는 건 이 세상에 암것도 없는 것이여." 하하하. 책을 읽는 아이 옆에서 흘깃 흘깃 보면서 엄마는 옆에서 아줌마 화이팅!을 외치고 싶어지는, 이 느낌은 엄마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거?
 
출판사에서는 활동지도 같이 제시해 주었는데, 독서 전과 후를 모두 감안하여 상당히 세밀하게 잘 구성되어 있다. 활동지가 일반 구매시에 전원에게 제시된다면, 부모들의 독후활동에는 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게으른 부모들을 위해 온라인 다운이라도 받게 해주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이 되었다.

아이가 저학년 시기에 얼른 '저학년 문고' 종류를 부지런히 읽어 놓으면 좋을 것 같은데, 아이가 요즘 '그냥 놀' 시간이 없다고 항변하고 있는지라, 책 읽을 시간을 마련해주는 것은, 분명 엄마 숙제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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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 신은 고양이 - 프랑스 편 비룡소 세계의 옛이야기 42
샤를 페로 원작, 강정연 글, 아니타 안제예프스카 & 안제이 필리호프스키-라뇨 그림.사진 / 비룡소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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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져 있는 명작은, 읽지 않고도 다 알 것 같은 기분이다. 보지 않고 본 척 하는 영화 Best 10 시리즈를 어디선가 봤는데, 아마 읽지 않고도 읽은 척 하는 책도 수두룩하게 댈 수 있을 거다. 읽은 척하는 매뉴얼인가 하는 책이 나온 것도 봤다. 사람들 심정은 아마도 다 비슷한가 보다.
 
'장화 신은 고양이'를 처음 접하고 역시 이런 생각을 했다. 이미 '장화 신은 고양이 눈망울'로 대표되는 영화도 본 마당에 책 내용이 뭐 특별하랴. 읽어보지도 않고 아이에게 건내어 주려고 했다.

그런데 책을 받아보니 표지부터 뭔가 좀 달랐다. 원작자와 글쓴이에 대한 명기는 그렇다치고, 그림 작가가 둘인데 그림/사진으로 되어 있다. 아이 동화 책에 사진이 뭔 말인고.
 
이 표지는 내가 알고 있는 '장화 신은 고양이'가 아니다! 그 해맑은 눈망울은 다 어디로 가고 저 딩굴딩굴 구슬 같은 게 붙어 있는 고양이가! 게다가 얼굴의 저 나무 조각은 무엇이며, 천 조각들이며 철사 들은 다 뭐란 말인가. 설마 이렇게 하나 하나 만들어서 책을 엮었다고?
 
하나 하나 재료를 이용하여 표정 변화를 만든 책이다. 표지의 벙글벙글한 고양이 얼굴이 놀란 표정으로도 순식간에 변하였다. 철사를 둥글둥글 구브려 눈알을 만들고 구명이 뚫려 있는 쇠조각으로 입을 표현하면서 깜짝 놀란 고양이의 얼굴이 되었다.
 
한편 쥐를 덥석 잡아 먹는 장면에서는 생동감 있는 눈알 굴리기와 삐쭉히 드러낸 이빨로 야성의 고양이로 변해 버렸다. 여러가지 소재의 사용과 아이디어로 고양이 얼굴이 여러 표정을 띄고 있다.
 
작가들이 가장 공들여 만든 것이 결혼식 장면이라고 했는데, 인물 하나 하나를 배치하고 촛불로 불꽃놀이를 표현하는 것이 힘들었다고 했다. 그림 하나 그리는 것도 물론 어렵고 상상 못할 일이지만 인물을 구상하고 맞는 재료를 구하고 적당히 배치하여 사진으로 표현하는 건 더더욱 나로서는 엄두를 내기 어렵다. 일반 그림책과 달리 이렇게 표현한 책은 내 머릿 속도 한 폭 더 넓어지게 만드는 것 같다.
 
내용은 알다시피 고양이 한 마리만을 유산으로 받게 된 남자가 고양이의 지혜와 꾀로 기회를 얻어서 결국 아름다운 공주를 배필로 맞이하여 잘 살게 되고 고양이도 편하게 잘 지내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얼핏 책을 읽고나서는 나도 이런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으면, 내 옆에서 누가 이런 지혜로움을 빌려 줬으면, 나에게도 이런 기회를 누가 주었으면, 이런 바람이 먼저 들긴 한다. 아이들도 책을 읽으면서 저마다 자기의 바람을 생각하며 나만의 고양이를 기대하게 되었을까? 아니면 이런 고양이의 지혜로움을 갖고서 어떤 어려움이라도 잘 헤쳐나갈 수 있도록 용기와 격려를 받게 되었을까?  
  
한편으로는 이 책을 읽고 품게 된 궁금증과 더 한 우려의 마음도 있다.
 
아무리 주인님을 위하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고양이의 이런 태도는 바른 일일까? '사납게 으르렁대는' 협박을 통하여 농부들에게 거짓된 말을 하게 만든 건 이른바 '협박에 의한 위계' 죄가 아닌가? 거기에 다른 주인이 있는 논을 카라바 백작의 것이라고 왕에게 거짓으로 알리고 믿게 만든 건 분명한 '사기' 죄이기도 한 것인데. 그저 '꾀'를 내었다고 넘어 가기에는 조금 심한 상황이 아닌가 싶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은 또 어떠한가. 앞에서 말한 논도 성도 사실은 '끔찍한 괴물'의 것이었다. 그래서 고양이는 이 괴물의 재산을 자신의 주인인 카라바 백작의 것이라고 주변을 위협하여 거짓으로 알리는데 동조한 것을 넘어서 괴물의 성 안으로 들어가 괴물을 (역시 꾀를 내어) 냉큼 잡아 먹는다. 그리고 안전하고 확실하게 괴물이 전 재산의 주인이 되게 만든다.
 
(물론 이 자체도 입에 담기 무서운 용어의 죄이기도 하지만) 이보다 앞서서 '끔찍한 괴물'이라는 표현 자체도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책 안의 내용으로만 보면, 이 괴물이 어떤 끔찍한 존재인지는 나와 있지 않다. 괴물이 나쁜 일을 평소에 저질렀는지, 괴물의 엄청난 재산이 남의 것을 가로채어 형성한 건지, 괴물이 선량한 (예를 들면 농부들) 사람들에게 못된 행동을 한 건지, 어떠한 내용도 나와 있지 않다.
 
괴물이 자신의 전 재산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심지어 목숨까지 내놓아야 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다. 책만으로만 보면 '끔직한 괴물' 이란 게 오로지 그 이유일 뿐.
 
책 속의 괴물은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긴 코는 부러진 나무가 볼쌍사납게 나와 있고 머리는 이상한 덤불들로 만들고 보기 흉하게 성긋성긋한 이빨도 표시해 두었다. 이미지로 볼 때 끔찍한 괴물은 '끔찍한 외모'를 지니고 있다는 걸 연상시키려고 했을 의도일테다.
 
괴물의 구체적인 나쁜 성격이나 행동이 나와 있지 않는 상태에선 '끔찍한'이라는 건 그저 '외모'로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밖에 없다. 하다 못해 한 줄로라도 괴물의 끔찍한 행동을 나타내어 주었다면, (그렇다고 해서 괴물의 재산을 뺏는 게 옳으냐는 별도로 하더라도) 끔찍한이 '외모'를 바로 수식하도록 하여 외모의 이미지를 존재의 성격으로 편견을 갖게 만드는 불편한 공식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을 것 같다.
 
더군다나 '끔찍한 괴물'에 대한 유일한 설명이 '세상에서 제일 가는 부자'라고 해 놓은 부분도 걱정스럽다. 저 페이지의 문장으로만 보면 (실제로 그 이상 설명도 없고) 혹시라도 끔찍한 괴물 = 돈 많은 부자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건 아닌가는 우려도 있다. 만약 부자의 것이기 때문에 뺏어도 좋다라는 생각이 스며들게 되는 건 옳은 방향은 아니지 않은가. 
  
책은 책일 뿐, 따지지 말자. 정성들인 책을 두고 너무 깊게 들어갔구나. ... 하지만 나에게는 늘 따지는 어린 영혼이 하나 있는 걸. 언제 어디서 어떻게 머릿 속에 생각들이 스며 들어 있다가 언제 어디서 어떤 식의 문제 제기를 해 올지 모르는 당황스러운 영혼.
 
아이들이 보는 책이니만큼 조금 더 조심하였으면 하는 아쉬움. 그림에 기울인 재기발랄한 발상과 정성 만큼 글의 연결도 조금 더 신경 썼다면, 아이에게 다시 읽히고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좋은 느낌의 책이 될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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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이 어때서 난 책읽기가 좋아
하신하 글, 박보미 그림 / 비룡소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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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아이는 글도 별로 없고 장수도 얼마 안 되는 창작그림책을 더 많이 봐도 괜찮을 나이 같은데 슬슬 그 이상의 독서량을 요구받는 나이가 되었다. 한편으로는 어느새 지식 정보 분야의 책들이 아이 책장에 많이 꽂혀져 가기도 한다. 아이도 관심 있어하고, 재미있게 읽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목적 없는 '이야기책'을 많이 읽는 게 좋을 것 같아 책장의 책을 이리저리 다시 섞어보기도 한다.

 

마침 [비룡소 난 책읽기가 좋아] 1단계 새로 나온 신간 책 한 권을 읽었다. 2014년 8월 10일 발행된 따끈따끈한 신간인데, 이 책은 1단계 36번으로 표시. 뒤의 독서 목록에 43번까지 기록되어 있는 걸 보니, 발행할 때 몇 권씩 묶어서 내든가, 아니면 미리 43번까지 기획을 해 놓았나보다. 

 

여자 아이들이 보면 관심 가져할만한 표지. 제목 부터가 이른바 취향 저격에 아기자기한 그림체까지. 인형놀이를 옮겨 놓은 표지같다. 글 그림 저자 소개를 보니, 이 또한 재미있다. 보통 이력만 죽 나열하는 것에 비해서 책과 관련 있는 '분홍'에 관한 설명이 재밌다. 얼마나 분홍으로 도배를 하려고 그래! 이런 생각이 들게끔.

 

주인공인 누리는 분홍색만 좋아해서 공주병이라는 놀림을 받기도 하는 아이. 딸 키우는 엄마라면 아이가 한번씩 분홍병을 겪고 가니 다들 공감할 내용이긴 한데, 막상 아이가 책을 읽을 나이인 요 또래에는 이미 과거의 역사가 되어 있다는 게 아이러니. 대부분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아듀를 하고, 분홍과 레이스보다는 뛰어놀기 편한 체육복과 바지를 더 가까이 하게 되니 말이다.

 

막상 책 읽는 당사자인 딸들의 공감은 떨어질 수도 있는데, '분홍이 어떻게 다 같은 분홍일 수가 있어요?' 극 중 아이의 말처럼 다양한 분홍에 대한 묘사와 그에 대한 설명과 함께 나오는 그림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우리 아이는 이처럼 세밀한 감성을 지니진 않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덩달아 한번 더 눈길을 보내고 색감과 표현력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아이가 공감하는 부분은, 분홍병 걸린 공주병 아이 묘사보다는 유치원 친구의 이야기. 별로 좋아하지 않는 유치원 남자 친구가 아끼는 분홍 옷을 입에 넣어서 화가 났던 누리. 다른 날, 누리가 창피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선생님도 다른 친구들도 이해하지 못했던 걸, 이 남자 친구만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누리의 마음을 알아주게 된 것. 예쁜 옷을 입었지만 화가 나서 찡그리고 있던 누리와 그로 인해 싸우고 혼난 적이 있어도 친구를 보며 환하게 웃어주는 호준이 얼굴이 비교되는 부분은 이 책의 핵심.

 

그리고 이렇게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부분. 자기가 좋아하는 부분을 그대로 받아들여주고, 그걸 인정해주는 친구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되는 것.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만 주장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생각해보게 되는 것. 짧은 이야기 속에서 아이들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생각거리들이다.

 

이야기의 끝은, 분홍만 고집하며 옷을 입으려는 아이와 아침마다 실랑이를 하느라 힘들었던 엄마가 아이가 스스로 골라서 편하게 옷을 입을 수 있는 새로운 옷장을 선물하는 걸로 끝난다. 그렇게 마련된 누리의 방 모습은 아기자기한 소꼽놀이책 같던 표지가 제대로 날개를 펴놓은 것 같은 예쁜 그림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누리가 친구와 마음을 열고 이해하게 되었듯이 엄마도 아이의 마음을 읽고 공간을 마련해준 걸까? 어쩌면 내가 좋아하는 것은, 나의 공간에서만 마음껏 즐기는 게 좋다는 의미를 말하려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분홍이 어때서'라고 제목은 되어 있지만, 어쩌면 자기가 좋아하는 걸 남에게 이해받거나, 그 모습 그대로를 남들이 받아주기는 그만큼 어려운 일이란 걸 이 책은 역설적으로 얘기해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이건 어른의 눈으로 읽은 책이기는 하지만. 

 

그림책보다는 좀 더 많은 글들. 그러나 아직 이야기책이라기에는 그림이 많은 책. 요 정도가 지금 편하게 책을 읽어내려갈 수 있는 저학년 이야기책이다. 그런데 책을 읽어내는 범위는 글의 양에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의 생각에 달려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난 이만큼 분홍이 좋지는 않았는데? 라는 아이의 첫 느낌. 나만 좋은 것보다는 다른 사람들도 같이 좋아해주는 게 더 좋지. 라는 두번째 생각. 그리고 그렇게 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아는 엄마의 속마음. 아이도 지금 읽을 때와 나이가 더 들어 읽을 때 책을 읽고난 느낌은 다를 것이다. 창작 이야기책의 매력은 역시 여기에. 아직은 이야기책을 더 읽어야겠다. 아이도 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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