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았어, 나중에 할게! 좋은책어린이 창작동화 (저학년문고) 64
박혜숙 지음, 심윤정 그림 / 좋은책어린이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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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책어린이 저학년문고' 시리즈는 다른 출판사의 저학년용 문고본에 비하면, 판형이 좀 큰 형태이다. 그리고 표지가 마치 그림책을 보는 듯 단행본 느낌으로 디자인이 눈에 띄어 공을 많이 들였다는 인상을 준다.

'알았어, 나중에 할게!'라는 책의 제목은 초등학생 아이가 아니라, 엄마가 봤을 때 뜨끔하게 다가온다. 아이 뿐만 아니라 엄마도 입에 달고 사는 말이기도 하니. 이게 과연 아이의 이야기일까? 아니면 엄마의 이야기일까? 표지로 보면, 이건 아이의 이야기이다.

"조금만 이따가". 이 말의 주인공은 아이이다. 주인공 이름도 '오미루'. 만날 자기의 할 일을 '미루는' 아이라서 미루인가보다. 그런데, 이 아이의 말은 책을 읽는 엄마에게도 감정이입이 팍 된다. '조금만 이따가' 아.... 찔린다.

물론 그림 속의 엄마처럼 나도 입에서 불을 뿜는다. 늘 아이에게 '빨리빨리'라는 말을 뿜어 낸다. "입만 열면 빨리빨리! 빨리 일어나라, 빨리 숙제 해라, 빨리 씻어라, 빨리 자라...." 맞다. 하루에 아이를 상대로 하는 말 중에 '빨리빨리'를 빼고 말을 할 수가 있을까. 나 역시 하루에 몇 번이나 이 단어를 사용하는지 재어보고 싶은 기분이다. 

게으른 걸로, 늘 뭔가를 미루는 것 때문에 혼난 아이들은 게으름을 고쳐주는 학원에 모인다. "난 소파에서 뒹굴뒹굴하다가 끌려 나왔어." "난 숙제를 미루고 게임하다가 끌려왔어." 그리고 어떤 걸 미뤄봤는지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일기 쓰는 걸 미루다가 엄마한테 혼난 적이 있어요." "전 학습지를 제때 안 풀어서 선생님께 혼났어요." "이 세상에 재미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요. 재미있는 거 먼저 하는 게 잘못은 아니잖아요." 아이들의 말이 아이들의 말로만은 느껴지지 않는다.

가장 미루고 싶은 것에 대한 이야기도 나눈다. "전 먹는 게 제일 귀찮아요." "저는 날마다 학습지 푸는 거요!" "책상 정리하는 거요!" "씻는 거요!" 아이들 맘은 사실 어른 맘. 어른도 그렇다. 이렇지 않은 어른이 과연 많을까? 매일 '빨리빨리'를 입에 붙여서 아이에게 쏟아 붓는 엄마도 마음 속에는 '미루기 대장'이 살아 있다.

"치우려고 했는데 엄마거 먼저 치웠잖아." "일기 쓰려고 하는데 엄마가 심부름을 시켰잖아." "조금 이따가 하려고 했단 말이야." 아이들의 마음 속에 살고 있는 '핑계 대장'은 어른의 마음 속에도 있다. 그 중에 최고는, '나는 아이에게 화를 내고 싶지 않았는데, 아이가 그렇게 안 만들잖아요.'가 아닐려나. 미루고 핑계대는 것에 익숙한 아이의 마음 속을 잘 살펴 본 듯한 이 책.

아이도, 자기가 자주 하는 버릇과 핑계가 책에 나오자 마치 본인의 마음이 들킨 듯 웃었다. 그런데, 사실 마음 속이 들킨 건 엄마였다. 나도 그러면서, 나도 늘 그러면서, 아니 더 하면서, 아이에게만 재촉하고 다그치고 있구나. 아이들의 눈을 통해 본 엄마의 모습을 보며 엄마의 마음은 콕 찔렸는데, 아이는 엄마보다는 좀 덜 한 것 같다.

역시 함께 제공받은 활동지를 통해 아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돌아 봤는데, 이야기의 마무리가 산뜻하지는 않다고 할까. 뭔가 명쾌하게 떨어지지는 않기는 하다. 이야기를 시작한 동기와, 그 안의 세밀한 묘사들, 특히 생동감 있는 대사 표현이 좋았던 만큼 마지막 장을 덮으며, 아이가 아하! 할 수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은 아쉬움.

아무리 엄마 마음에 와 닿았다고 해도, 결국 이 책은 아이 책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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