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옛마음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고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함]
시집 <옛 마음>은 읽는 내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게 만든다. 스마트폰 대신 공중전화가 있고, 메시지 대신 편지가 오가던 시절. 이 시집은 80년대의 감성을 배경으로, 다방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써 내려간 편지 같은 시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빠른 고백도, 즉각적인 응답도 없는 세계에서 ‘기다림’ 자체가 하나의 서사가 되었다. 시집을 읽으면서 누군가의 시를 읽는 일이 아니라 자기 인생의 한 장면을 다시 떠올리게 되는 것 같다. 처음 몇 편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화자는 분명 시집 속 인물로서 시골집에서 전화를 받고, 약속을 정하고, 눈길을 지나 다방으로 향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몇 장을 넘기다 보니 문득 그 자리에 나를 앉혀두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아주 오랜만에 연락이 온 ‘임’을 만나기 위해 화자인 가상의 주인공은 시골집을 떠난다. 약속을 정하고, 전화를 끊은 뒤에도 마음은 이미 길 위에 올라 있다. 1부 ‘그대에게 가는 길’에서는 전화기 너머의 숨결, 눈이 쌓인 길 위의 망설임 같은 장면들이 차분하게 펼쳐진다. 시들은 사건을 급하게 밀어붙이지 않고, 이동하는 시간과 마음의 떨림을 하나하나 따라간다. 마치 창밖으로 흘러가는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듯 읽었다. 다방으로 옮겨진 2부의 ‘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며’에서는 각설탕이 천천히 커피에 녹고, 창밖에는 함박눈이 내렸다. 화자는 도착했지만 이야기는 멈춰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 정지된 시간 속에서 마음은 더 깊어지고, 기다림은 단순한 불안이 아니라 상대를 향한 믿음과 기억의 확인이 된다. 오지 않는 시간을 견디는 동안, 화자는 스스로의 ‘옛 마음’을 마주하고 있었다.
시를 읽으며 모두 저마다의 ‘임’을 떠올릴 듯하다. 오래 연락하지 못한 친구일 수도 있고, 끝내 만나지 못한 사랑일 수도 있겠다. 혹은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나 자신일 수도 있다. 이 시집이 특별한 이유는, 그 임의 얼굴과 이름을 끝내 말해주지 않으면서 비워진 자리에 독자의 기억이 자연스럽게 들어서도록 하고 있어서다. 다방의 창가에 앉아 있는 화자를 바라보며, 나는 문득 생각했다. “혹시 나도 누군가를 이렇게 기다리게 한 적이 있었을까.”
결국 오고야 만 당신을 만났을 때, 안도감이 들었다. 기다림이 헛되지 않았다는 사실보다, 마음이 서로를 향해 있었다는 확인이 더 중요하게 다가왔다. 통하는 마음은 늘 말보다 늦게 도착하지만, 도착하고 나면 그동안의 시간을 모두 품고도 남았다. 이 시집을 덮고 나면, 누구나 한 번쯤은 마음속 다방에 다시 앉게 될 것 같다. 눈이 내리고, 커피가 식어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다리고 싶은 사람이 있었음을 떠올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