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게 흐르는 Dear 그림책
변영근 지음 / 사계절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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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게 흐르는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고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함]

 

사계절 출판사에서 다시 선보인 변영근 작가의 그림책 <낮게 흐르는>은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세계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책이다. 2018년 독립출판으로 먼저 소개되었다가 양장본으로 재출간된 이 64페이지의 그림책은, 단정한 물성과 조용한 태도로 독자를 맞이했다. 책을 손에 들었을 때 느껴지는 묵직함은 내용이 품고 있는 느림의 감각과도 닮아 있는 듯하다. 어쩌면 이 느린 책이 지금의 속도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걸 조용히 증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그래픽 노블은 한 청년의 여정을 따라간다. 서사가 분명한 이야기라기보다 청년이 자연 속을 거닐며 마주하는 풍경과 감정의 흐름을 함께 느낄 수 있다. 산길, 물가, 들판 같은 공간 속에서 그는 무언으로 존재하지만 비어 있지 않고, 움직이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의 리듬에 자신을 맞추며 삶의 속도를 의식적으로 늦추는 것 같다. 풍경과 나란히 서서 같은 속도로 숨을 쉬고 있다. 청년의 얼굴에는 극적인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는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상태로 자연 속에 놓여 있지만 그 평온함은 공허가 아니라 충만에 가깝게 느껴진다. 변영근 작가는 길 위에서 만난 것들과 하나 되어 마음이 가득 차면 더 낮은 곳으로 흘러가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문장이 이 책 <낮게 흐르는> 전체를 관통하는 태도이자 철학처럼 느껴진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완전히 무언이라는 점이다. 글자가 없기에 독자는 해석의 주도권을 넘겨받는다. 어떤 장면에서는 자신의 기억을, 어떤 장면에서는 감정을, 또 어떤 페이지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숨을 고르게 된다. 그래픽 노블을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 <낮게 흐르는>은 장르의 부담을 덜어주는 책이다. 이야기를 이해해야 한다는 압박도, 상징을 읽어내야 한다는 긴장도 없고 그저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만 스스로 선택하면 된다. 빠르게 넘길 수도 있지만, 어느 순간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머무르게 되는 장면이 반드시 생길 것이다. 그것은 독자의 내면 속 속도와 맞닿는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물에 발을 담그는 장면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변영근 작가의 수채화는 이 책의 핵심적인 언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자연에 머무는 감정의 결을 포착하여 색과 색 사이를 스며들게 둔다. 책 속의 장면들은 독자의 마음속에서 각자의 기억과 감각을 불러와 누구에게나 같지 않게 읽힌다. 각자가 살아온 속도와 피로의 무게만큼 다르게 스며들테니 말이다.

 

이 책을 보면서 마음이 채워지는 느낌을 받았고 사유의 깊이를 넓혀주는 기분이 든다. 제목처럼 충만한 마음으로 더 움켜쥘 필요가 없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아래로 흐르는 인생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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