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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줄 말은 연습이 필요하다 - 세계 명시 필사책
김옥림 지음 / 정민미디어 / 2025년 12월
평점 :
그대에게 줄 말은 연습이 필요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고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함]
요즘엔 읽고 쓰는 책이 참 좋다. <그대에게 줄 말은 연습이 필요하다>도 시집과 필사집의 경계에 놓여, 펜을 들고 한 줄 한 줄 따라 쓰는 동안 비로소 말과 마음이 연결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한다. 시인의 언어를 내 손으로 옮겨 적을 때, 이전에는 스쳐 지나간 듯했던 감정이 또렷하게 떠오르고 새롭게 상상되며 나의 언어로 자리 잡는 기분이 들어 충만해진다. 이 책에 실린 시들은 각각 다른 시대와 언어에서 왔지만, 손에 잡히는 문장으로 만났을 때 우리 삶의 흔적과 맞닿는 것 같다. 사랑, 상실, 외로움, 희망 같은 보편적인 정서가 종이를 채우고, 그것은 머릿속에서 머무는 사유가 아닌 몸으로 흡수되는 감각이 되었다.
함형수의 해바라기의 비명, 신경림의 갈대, 괴테의 첫사랑,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등 74편의 명시가 수록되어 있지만 기억에 남았던 김재진의 <달빛 가난>과 로버트 번즈의 <찬바람이 그대에게 불어온다면>을 언급하고 싶다. 오늘날 대중이 시를 외면하는 이유 중 하나가 겉치레나 특정 사조에 얽매여 의미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언어로 쓰여있기 때문인데 그런 면에서 김재진의 작품은 난해하고 거추장스러운 기조에서 벗어나 있고 간결하면서도 덤덤하고 정다운 매력을 지니고 있어 독자에게 사랑받고 있다. 달빛이 환하게 비추는 배경과 아버지의 아들의 꾸밈없는 대화가 힘든 상황에 대한 우울함보다 따스함을 느끼게 해주어 좋다. 또한 로버트 번즈의 작품도 동반자에게 자신이 안식처가 되어 고통을 함께 나누겠다고 다짐하니 얼마나 힘이 되는 말인가. 오늘같이 한파가 부는 날에 더욱 따뜻하게 느껴지는 시였다.
어떤 독서든 수동적인 소비로 끝나기 쉽다. 그러나 이 책은 다르다. 오히려 쓰는 행위가 곧 읽는 행위가 되고, 읽는 행위가 곧 나를 들여다보는 일이 된다. 책장을 덮을 때, 우리는 단지 시 몇 편을 쓴 것이 아니라 말과 마음의 간극을 좁히는 연습을 한 셈이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필사집을 넘어 자신과의 내밀한 대화를 위한 동반자 같은 책이라 할 수 있겠다. 거창한 위로나 해답을 제시하진 않지만 다만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진심이 담긴 말은 우연히 나오지 않으며, 천천히 써보고, 오래 머물러야 비로소 가능해진다고.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누군가에게 건넬 말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혹은 자기 마음을 제대로 듣고 싶은 사람에게 오래 곁에 두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