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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택 시선집
박주택 지음, 프락시스연구회 엮음 / 새미 / 2025년 6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고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함]
박주택 시선집

아이가 방학 때 할 숙제 중 하나가 곤충관찰일지였다. 오늘 아침 둘째를 함께 등원시키고 돌아오는 길에 첫째와 함께 매미 허물과 나비 사진을 찍어왔다. 무심코 지나쳤던 자연의 일상을 관찰하다보니 느낌이 새로웠다. 박주택 시인의 시에도 벌레가 등장한다. 문학평론가 정명교 교수는 그의 시선집을 해설해주며 자연, 물상, 대상을 노래하기보다 운동을 모형하고 대상을 운동하게 하며, 그 움직임의 형상을 묘사하는 특징을 소개했다. 낯선 존재의 생의 방법론을 학습한다는 해설이 눈에 띈다. 파리 한마리가 후덥지근한 공기 속을 날아 와 여자와 거칠게 부딪치고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다는 시구가 순식간에 피었다 사라지는 현상 너머 다른 생의 기척을 드러내고 있었다.
시신에 화장을 하는 장례 집행자에 대한 시도 인상적이다. 짐승 가죽처럼 노란 얼굴, 서늘하게 풍겨 나오는 잎사귀, ...(중략) 수북한 찰기 잃은 기억의 곤죽들 어느덧 시신은 자신으로 바뀌어 시트 위에 창백하게 누워 있다는 시구. 장례 집행자가 죽기 전에 기다리고 있는 자신과 만나게 되는 이 모습을 형상화하며 이미지가 떠올라서 마음마저 서늘해졌다. 그저 가방 하나를 소재로 ‘표정이 없다’, ‘많은 날들을 이것저것으로 채워왔지 않은가’ 라는 표현으로 배부른 자의 불룩한 배를 닮았다고 쓴 시인은 마치 가방이 부끄러운 표정도 짓지 않고 이빨만 세우고 천장 위로 아가리만 벌린 채 대체 어쩌자는 것이냐고 반문하고 있다. 나도 평범한 물상을 이렇게 시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계속 비틀어보고 다시 보는 연습을 많이 해야할 것 같다.
시로 표현한 모습이 어떤 것은 낯설고 어떤 것은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 책 속의 문장들이 비에 젖는다는 것, 물이 책에 젖는다는 시구는 필사를 해놓고 싶다. 아니 이 시선집을 전체 필사해보리라. 그의 시력 40년을 통해 의지와 물상의 긴장감을 느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