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의 우울 - 우울한 마음에 필요한 것은 위로가 아니다
이묵돌 지음 / 일요일오후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선의 우울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리나> 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서로 다른 모양의 우울을 겪는 우리네 모습만큼 어쩌면 어쭙잖은 위로나 방법론은 그다지 소용없을지도 모르겠다. 오늘 읽은 책 <최선의 우울>은 이유없이 우울한 마음에 대하여 필요한 것은 위로가 아님을 분명히 밝혀두었다. 저자 역시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며 자신이 경험하는 우울이라는 것을 마주하고자 노력했다. 우울로부터 벗어날 순 없지만 그것에 저항하는 일은 의미가 있다고. 최선을 다한 우울의 기록을 읽으며 내 방식대로 헤매고 방황한 독자로서 일정 부분 공감과 의도치 않은(?) 위안을 받았다.

 

얼마 전 오묘한 패배감을 맛보았다. ‘겉보기에는 쉬워 보였던 것들이, 막상 해보면 말이 안 나올 만큼 어려운 경우가 흔히 있다는 것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도로주행을 한 번 떨어지고 어제에서야 붙었다. 제일 쉬운 A코스에서 어이없게 떨어진 날, ‘마음속으로는 이미 해내고도 남았어야 할 일들이 풀리지 않을 때, 혹은 사소한 일들에 지나치리만큼 흥분하거나 무기력해질 때같은 기분이 들었다. 휴직이 끝나는 10월 안에 합격해야한다는 부담감에 지나고 보면 별것도 아닌 것들에 잔뜩 긴장하게된 것이었다. 저자의 결말대로 나 또한 진부한 결말을 맞이했다. 합격 통지를 받았고 내일 면허증을 찾으러 간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실의에 빠질 일도 아니었는데 아무리 다시 생각해봐도 그땐 그럴 수밖에없었다는 문장이 뼈를 때린다. 내 마음을 200% 대변해준 문장이었기에.

 

이 밖에도 <소확행의 두 얼굴><무작정 떠날수록 우울해지는 이유> 의 논지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받아들인 그동안의 명제가 사실은 오류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소확행을 추구하며 사는 사람들의 본질은 슬픔이고, 해소되지 않는 우울이다.’ 는 말에 어느정도 공감한다. 치료가 아닌 마취라 하면 정확할까? 소확행의 소유로 정작 공허감과 권태, 고독과 우울을 해소할 순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해결책은 무엇인가. 가짐으로써 느끼는 것이 아니라 느낌으로써 가질 수 있는 것에 가까운, 이를테면 샤워를 마치고 뽀송한 속옷으로 갈아입었을 때 느끼는 상쾌함 같은 것이 하루키가 정의한 소확행이며 이미 갖고 있ᄋᅠᆻ지만 느끼지 못했던 것을 똑바로 인지하는 일일 것이다. 후자의 소재인 여행의 경우도 온갖 정서적 문제에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다뤄지는 여행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저자는 여행이 우울의 해소에 대한 실질적 역할을 할 수 있으려면 우리의 여행관이 소비나 휴양이 아니라 발견과 사유에 있어야 함을 지적했다. 우리가 여행지에서 느끼는 그들의 비일상이 그들에겐 틀에 박힌 일상이며 내가 살던 곳의 처절한 내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말이다.

 

책을 다 읽고나서도, 책을 마치고 여전히 우울한 기분은 떠나지 않았던 저자처럼 나도 그랬지만 그저 머릿속에 성질 사나운 고양이를 한 마리 넣어놓고 있다 생각하며 산다면 나름 괜찮을 것 같다. 위로를 남발하는 여느 책보다 더 마음이 와닿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협찬을 받았고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