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불을 꺼야 하네 걷는사람 시인선 79
최명진 지음 / 걷는사람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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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불을 꺼야 하네


일상의 언어로 먹먹한 삶의 슬픔을 그려낸 시인의 시선이 느껴진다. 이병일 시인의 해설대로 마치 저공비행을 하며 마주친 삶의 얼굴들을 보고 있는 듯하다. 

시인이 버린 다 쓴 비닐팩 물티슈 뭉치들을 하나둘 거두어 다시 개켜 놓는 엄마의 모습, 일회용 접시들을 씻어 서늘하게 말리고 있진 않는지 <그게 얼마나 한다고>라는 제목의 시를 읽는 순간 파리해진 손이 된 누군가의 모습이 떠오른다. 허리 한 번 펴기 힘든 파출이모들에 대한 단상 또한 여느 흔한 주방의 아주머니들이 생각났다. 그릇들을 닦고 쟁이면서 ‘그냥 한번씩 버는 재미죠’ 라는 대답이 왠지 슬픔이 유쾌하게 오버랩되는 기분이 들었다.


시집 <슬픔의 불을 꺼야 하네>에서는 최명진 시인이 등단 후 오랫동안 공백을 거쳐 더 단단해진 모습으로 발간한 시의 언어를 포착할 수 있었다. 제일 처음 배치된 <첫눈>은 아내 몰래 50만원을 드려 마음이 싱숭생숭해진 시인의 미안함을 표현하고 있었다. ‘현실이라는 거대한 환각을 주의 깊게 포착해내고 있’다고 진단한 이병일 시인은 이 세상의 가장 한심한 것들이 시를 이루게 하는 힘임을 이야기하며 슬프고도 아름다운 노래에 흠뻑 취해볼 것을 독자에게 권했다.


난 시들 중에서도 <비빔밥>이라는 시가 가장 와닿았다. 화가 난 엄마가 부엌으로 들어가 입안 가득 비빔밥을 밀어 넣으시고 목멘 입으로 뭐라고 뭐라고 하신다는 모습이 마치 우리네 일상에서 한번쯤은(혹은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이진 않은지 자조했다. 괜시리 가슴이 먹먹해진다. 엄마는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걸까. 그 말을 비빔밥으로 집어 삼키며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보일 수 밖에 없는 게 한 편의 비극같이 느껴진다. 


시를 통해 역시 시인의 시선은, 삶이 아름답지만은 않지만 그것을 지극한 마음에 담아 담백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박수를 드릴 만하다. 함께 시인이 부르는 이 노래를 따라 부르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협찬을 받았고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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