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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으므로 세상은 따스하다
김종해 지음 / 북레시피 / 2022년 11월
평점 :

시가 있으므로 세상은 따스하다
등단 60년이 된 김종해 시인의 산문집을 읽었다. 서문에서 그는, 이 책에 수록된 모든 산문에 대해, 형태는 시부문 장르가 아니면서 주제는 ‘시와 시인’ 으로 귀결된다고 밝혔다. 시집 <별똥별>을 펴낸 후 1년 동안 단 한 줄의 시도 쓰지 않고 시로부터 멀리 떨어진 유배 생활을 즐겼다는 김종해 시인. 시 쓰기에 대한 자신의 회의 때문이었다고. 하지만 그 동안의 언로 속에서 달라지거나 변해있지 않은 자신이 못마땅하고 불만이었다고 회상했다. 단지 시 쓰기의 화법이 ‘나’에서 ‘짐’ 으로 수직격상 된 것 외에는. 그렇다고 그 ‘짐’ 이라는 뜻이 신민의 생살 여탈권을 쥔 절대권력자는 아니었다. 소심증에 갇혀있고 우수 속에 떠도는 짐, 불행하고 불우한 황제의 외로움과 슬픔이 그려진 감정의 짐이다. 1970년 대 마취를 하고 척추 수술을 받던 다섯 시간 동안 무의식 공간에서 저자는 신기한 체험을 했다고 한다. 꽃으로 덮인 궁궐의 침상과 아리따운 궁녀들. 의식이 회복된 후 간호사들이 와서 자신이 했던 황제의 말씀을 전해주었다는 에피소드가 너무 재밌었다. 김종해 시인이 사칭(?)한 짐은 사용해도 될 것같다.
시인들은 평소 사물을 비롯한 모든 것을 관찰하고 느낄 때 남다른 감각이 있거나 평범해서 지나칠 수도 있는 것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부류의 사람들 같았다. 그들의 시를 읽고 있으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 하는 기분이 들었었다. 김종해 시인은 <시인을 위한 메시지>에서 ‘시인이여. 어쩌겠는가. 그대는 그대가 가진 예각을 지혜롭게 감춰라. 그러나 죽을 때까지 일생의 삶 속에서 예리한 날과 각을 세워 한 편의 좋은 시를 얻어야 한다’ 고 말했다. 그들이 발견하는 소재의 특별함은 나신의 몸속에 서 있는 날이 선 각때문일까? ‘모난 삶의 치유가 시 속에 있다’ 는 시구에 200% 동감한다. 시는 이렇듯 살아있는 각으로 자신을 쏟다붓고 담금질하여 탄생하는 것이리라.
시인이 인류사를 통틀어 단 한사람의 소설가를 호명한다면 도스토옙스키를 꼽는다니 나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언젠가 읽다 포기했던)을 다시 집어들어 보겠다. 곧 다가오는 겨울에 책 속에서 표현된 ‘차창에 눈발처럼 달리는 자작나무 숲’과 ‘눈 오는 언 하늘을 채찍으로 가르며’ 달려온 그의 작중 인물들을 만나러.
시인의 구도자적 마음가짐과 저자 김종해 시인이 문단 활동을 하며 인연을 맺었던 서정주, 박목월 등 문인들의 면면을 보고 싶다면 이 산문집을 펼쳐보시라.
출판사로부터 도서협찬을 받았고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