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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인 - 온전한 나를 만나는 자유
서지현 지음 / 미다스북스 / 2022년 10월
평점 :
아날로그인
저자와 비슷한 또래와 처지인 나는 오늘 읽은 이 책 <아날로그인>에 많은 공감을 했다. 무엇보다 표지를 펼쳤을 때 눈에 띈 손글씨, “000님께, 깊어가는 가을, 아날로그 감성을 가득 담아 서지현 드림” 이라는 아날로그적인 편지글이 마음을 환하게 적신다.
<떼쓰지 않는 아이>, <나의 반려서적, 한국문학전집>, <운전 못하는게자랑은 아니지만>에서 특히 나와 오버랩이 많이 되어 글을 읽는 내내 마음이 콩닥거렸다. 어린 아이 앞에서 앞뒤 못 재고 입질을 하는 아주머니는 어디든 있는 모양이다. 의도치 않은 말이었겠지만 그것은 때로 아물지 못한 가슴 속 생채기를 남기기도 한다. 나도 꽤 어른스러운 아이였다. 첫째이기도 했고 어린 나이부터 엄마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은 철이 빨리 든 아이였던 것 같다. 언젠가 생일선물로 바비인형이 갖고 싶었는데 옆집의 누군가가 철제키티가방을 사주는게 더 실용적(?)이라고 한마디 참견을 해서 엄마가 그걸 사줬었다. 그것도 나름 예뻤지만 내가 갖고 싶던 아니라 성에 차진 않았다. 그래도 불평하지 않았던 거 보면 착한 아이가 되고 싶었나보다. 유치원 시절 크리스마스날 산타할아버지에게 동그란 계란과자를 선물받았는데 크리스마스이브날 슈퍼에서 엄마가 나 몰래 그 과자를 사서 포장했던걸 나는 목격했었다. 엄마가 준 선물이라는 걸 깨달았지만 아무말 하지 않았다. 속이 깊었던 것 같다. 저자에겐 남편의 ‘열혈강호’ 시리즈만큼 소중한 33권짜리 한국문학전집이 있었다. 이것은 그 당시 33권으로 30만원이었고 딸 한 달치 엄마의 급여였다고 한다. 열달로 쪼개 3만원씩 열 번을 지불해 책을 좋아하는 딸에게 안겨준 문학전집. 그 가치를 헤아리기 힘들 것 같다. 자신의 반려서적이라 표현한 이런 책이 내게도 있었다. 초등학교 들어갈 때쯤 엄만 세계문학전집과 한국문학전집 세트를 큰맘 먹고 사줬다. 아빠 몰래. 아빠에게 생활비를 받아 쓰는 엄마에겐 무리한 구매였다. 아빠는 단행본을 사주자는 주의였고 엄마는 그 반대였다. 결론적으로 한 세트는 반품하고 한 세트만 사주는 것으로 합의를 보신 것 같다. 유명한 출판사 프*뷀에서 나온 책이었는데 내가 무척 재밌게 읽어 닳고 닳도록 봤었다. 중학생 쯤 되었을 때 그 책을 백과사전과 교환해주겠다는 어느 출판사의 말에 혹해 바꿨던 것을 지금 후회한다. 백과사전은 잘 보지도 않았고 그 책은 마흔이 다 되어가는 내 기억속에 아직도 생생히 남아있기 때문에. 아직도 소장하고 있다면 우리 아이들에게도 꼭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가 가득한데 말이다. 저자와 같이 나도 아직 운전면허가 없다. 얼마 전 어린이집을 등원하게 된 아이를 출퇴근 시간에 함께 지하철을 타고 데리고 다니는데, 지인들이 면허 빨리 따서 운전해서 같이 오란다. 뚜벅이의 삶이 언젠간 끝날 것 같은 예감이 들긴 하는데 여전히 지금의 소신은 굽히고 싶지 않다. “면허요? 따려면 진작 땄겠지요. 육아가 가장 힘들다는 10년 세월, 발품 팔아 애 둘을 키워냈는데, 이제 와 억울해서 못 따요.”라는 저자의 눙치는 대답이 마치 내 마음같다. 같은 아날로그인으로서 계절의 미묘한 변화와 시시각각 달라지는 공기의 질감, 이 모든 생의 감각은 뚜벅이만이 알 수 있다.
미니멀라이프를 추구하는 나는, 이제 아날로그 라이프도 추구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오늘은 볼펜 대신 연필로 일기를 써보겠다. 어렸던 그 시절 그대로.
출판사로부터 도서협찬을 받았고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