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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홍이 아니라 분홍 - 제29회 눈높이아동문학상 동화 부문 우수상 수상작 ㅣ 고학년 책장
정현혜 지음, 전명진 그림 / 오늘책 / 2022년 9월
평점 :
진홍이 아니라 분홍
책을 읽으며 영화로 만들어지는 상상을 했다. 붉은색으로 염색한 명주천이 빗물에 씻겨 내려가는 모습, 마치 피의 원한을 씻어내는 의식 같은 그 시각적인 화면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오늘 읽은 책 <진홍이 아니라 분홍>은 강렬하고도 아름다운 염색의 세계로 안내한다. 실존인물을 바탕으로 진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이 책은 제29회 눈높이아동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한 작품이기도 했다. 주인공 란이는 정몽주와 뜻을 같이한 맹가 가문의 후손이다. 고려가 지고 조선이 세워질 때 그녀의 가문은 역적으로 전락했고 현실은 절망스러웠다. 란이는 여성이지만 남성 못지않은 용감하고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홍염장이 되어 천을 염색하게 된다. 득춘이 꼬맹이 여자를 제자로 받아들이는 데 불만을 터뜨리지만 홍염장 할아범은 보통아이가 아님을 알아보고 란이를 붉음의 세계로 받아들인다!
새로운 왕이 된 이방원은 명주 백 필을 붉은색으로 염색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붉은 명주 천이 마당 가득 너풀거렸다. 마른 바람이 붉은 천들을 조용히 춤추게 하는 밤,’이라는 표현이 회화적으로 연상되었다. 원수의 명령 혹은 청에 어명을 받든 것이 아니라 어머니와 오라버니를 위한 붉음이라 생각한 란이는 이 명주 백 필이 그저 자신의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라고 여겼다. 그날 밤 왕이 재단을 향해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었다. 백성들의 비를 빼앗지 말아 달라고, 조선 천하가 말라가니 부디 비를 달라고 말이다. 왕은 꺼이꺼이 울며 란이의 눈에서도 눈물이 핑그르르 돌았다. 그때 우르릉 우르릉 천둥이 날아오더니 쾅쾅 비가 내리쳤다. 쏟아지는 비에 마당의 붉은 천들이 고스란히 비를 맞고 있음을 알아차린 란이는 정신없이 천을 걷어 내렸다. 그 때 ‘색을 돌려놓아라!’ 라는 스승님의 호된 음성이 느껴졌다. 탁한 진홍은 분홍색으로 바뀌고 있었다. ‘마음 깊은 곳에 응어리진 피고름들이 묽게 풀어지는 듯’ 했다.
이윽고 다시 분홍색으로 염색한 분홍 명주 천을 본 왕은 기가 차 실소가 나올 뻔했지만 ‘충의 색’ 이라고 말하며 조선의 상징인 오얏꽃을 보낸 란이에게 왕은 진한 감동을 받게 된다. 그녀에게 이 분홍색은 원한을 지운 마음이기도 했다!
읽는 내내 한 폭의 동양화가 연상되어 신비로웠다. 게다가 단순한 역사 조명을 넘어서 주인공을 통한 삶의 지혜와 태도를 배울 수 있는 교훈까지 발견할 수 있어 참 유익한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협찬을 받았고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