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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브리카 ㅣ 호밀밭 소설선 소설의 바다 7
김지현 지음 / 호밀밭 / 2022년 6월
평점 :
파브리카
정말 작가의 말마따나 여름철 장마에 어둑한 방안에서 낮은 조도 아래 읽으면 더욱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표지는 빛의 반사에 따라 여러 색으로 반짝인다. 작품 세계를 입체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여겼다.
오늘 아침 뉴스엔 집 근처 지하철역이 침수되었고, 내가 출근하는 직장근처의 역사는 곳곳에 누수 표시가 되어있었다. ‘내 집의 천장에서 그렇게 물이 쏟아진다면, 내가 고심해서 고르고 안정감 있게 배치해 놓은 가구와 집을 흠뻑 적시고 망가뜨린다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누수 p.51>
인부들이 말도 없이 가구를 옮기고 서랍장을 분해하며 남의 집 살림을 마구잡이로 해체하고 있다면? 무방비로 집이 헐리고 있다면? 정말 공사 소음만큼이나 마음속이 시끄러울 것 같다. 오래된 아파트였지만 신혼집이었고 말끔하게 리모델링한 지 일년밖에 되지 않은 집이 걸레짝처럼 너덜너덜해지고 있었다. 집을 샀을 때 탐탁찮게 보던 엄마의 잔소리가 새삼 생각났다. 공전하는 지구와 달처럼 끝까지 좁혀지지 못한 채 서로를 겉도는 모녀의 모습이 실감나게 그려졌다. 냉장고에 반찬을 빼곡히 채워넣으며 상대가 기대하지 않은 호의를 베푸는 것, 자신을 숨막히게 하는 엄마의 주특기라 여겼다. 어쨌든 포장만 되고 배달은 힘들다고 해 공사하시는 분들을 위해 근처 국밥집까지 픽업을 다녀온 여자는 나사를 조였다 풀며 지지부진한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교정원고를 펼쳐들었다. 그 모습을 본 대영 누수 사모는 자신도 문학소녀였다며 검찰청 사무실에 앉아 타자기를 두드렸다고 물어보지도 않은 말을 붙인다. 3일 만에 마무리하겠다는 일정이 지연되고 어쩌고 우여곡절 끝에 싱크대 조립까지 마치니 공사 끝. 저녁은 좋아하는 돈가스 정식믈 먹겠다는 사장님 내외의 묻지도 않은 이야기에 ‘나’ 는 처음으로 거기가 어디냐고 물었고 아들이 사다 줘서 처음 먹어봤다며 아들 이름은 ‘대영’ 이고 지금 군대에 가 있다고 했다. 사모의 휴대폰엔 군복을 입은 젊은 남자와 사장이 활짝 웃고 있었다.
<누수>가 요즘 날씨와도 딱이라 제일 먼저 발췌해서 읽어봤는데 서로에게 무뎌지고 익숙해져 드러내지 않던 문제들이 일상의 균열과 함께 불거지며 눙치고 넘기던 감정이 드러났다. 저자 김지현 소설가는 뒷이야기에서 이렇게 인터뷰한다. <누수>에 자신의 생활 모습이 가장 많이 투영된 것 같다고.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은 작가가 가까스로 만들어낸 자신의 삶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제일 먼저 5페이지의 엽전과 같았던 <파브리카>는 sf 장르에 숨겨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문구들이 눈을 사로잡았다. ‘자신을 만든 남자의 누나’ 라는 말이라든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수많은 얼굴을 달고, 역사를 업고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랄지, ‘순식간에 우리를 한패로 만들어버리는 저 이목구비’ 등이 가족의 애증을 잘 담아낸 것 같다.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우연히 발생한 강제적 공동체, 가족에 대해 단절과 이음이 오가는 여러 이야기를 세밀하게 포착한다. 이들이 내는 파열음이 예사롭지 않다.
출판사로부터 도서협찬을 받았고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