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공무원의 우울 - 오늘도 나는 상처받은 어린 나를 위로한다
정유라 지음 / 크루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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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공무원의 우울

 

  내 또래 같다. 나이를 가늠해 보니. 제목만 봐서는 직업 때문에 오는 우울인가 싶었는데 그것보다 더 힘들었을, 가족으로부터 오는 우울감이었다. 목차 처음부터 자살시도라는 제목을 맞닥뜨렸다. 긴장감이 맴돌았다. 처연하게 서술한 그때의 상황이 가슴 아프다. 살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지만 숨이 막히고 생존 본능 때문에 미련스럽게도본능은 이성을 따라가지 못하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고 했다.

 

  저자가 스스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고자 했던 이야기, 자신을 끊임없이 이해하는 동성의 연인이야기, 대체로 부모에 대한 욕과 집에서의 독립 욕구, 혼란스러운 성 정체성을 언급한 일기장을 누군가 훔쳐본 사건, 겨우 초등학생이었는데 부부 싸움에 껴서 말렸던 이야기 등 기억의 파편조각들을 건드릴 때마다 저자는 홀가분하기보단 더욱 가슴을 찌르는 듯 아픈 통증과 답답한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폭력적인 아버지와, 기분에 따라 자식을 대한 엄마, 그런 엄마의 우울을 먹고 자란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그 우울감에 지배당하고 있었다. 자신의 감정을 거르지 않고 자식에게 토해낸 부모였으니 아이가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리라. ‘죽으면 편해라는 말로 자식을 가스라이팅해 온 엄마. 무의식 속에 그 말은 저자에게 뿌리깊게 뻗어있었다.심리 상담을 통해 엄마의 생각과 자신의 생각을 분리해야 한다는 말을 듣기 전까진 언제나 죽음을 생각했다는 저자의 고백이 참 슬프다.

 

  남편의 폭력 때문에 엄마는 그 폭력을 자식에게 되풀이한 것으로 보인다. 자식은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었다. 그럼에도 딸은 나라도 엄마가 기댈 수 있는 딸이 되기를 소망했다. 마치 자식이 엄마를 더 사랑하는 것 같았다. 엄마는 자식이 원하는 형태의 애정을 돌려줄 능력이 없었다. 두 사람이 생각하는 애정의 차원이 완전히 다르고 바라는게 달랐다. 암에 걸린 엄마는 딸인 저자에게 모질게 대했다. 감정 기복이 심하게 흔들렸고 그것 또한 남편의 폭력으로 인한 결과였다. 두 모녀의 관계가 안타깝다. 상담과 치료를 병행하며 엄마를 대하니 가이드라인이 생긴 것 같아 한결 마음이 편하다는 저자가 안쓰럽기도 했다. 해야 할 것, 하지 말아야 할 것, 거리를 얼마나 두어야 하는지 등을 통해 적정선을 설정했다니 한편으론 안도감이 든다. 부디 여느 보통사람들처럼 자신을 위해 살아가길 응원하며. 부모, 특히 엄마에 대한 외사랑을 끝내고 자신의 고단한 삶부터 천천히 아물어지길. 저자는 사랑받기에 충분하다. 무엇보다 스스로를 사랑하길 진심으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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