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에서 말하기로 - 심리학이 놓친 여성의 삶과 목소리
캐럴 길리건 지음, 이경미 옮김 / 심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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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에서 말하기로

 

인류에서 반은 여성인데 왜 여성은 모든 면에서 배제되었을까? 심리학 이론도 마찬가지였다. 여성은 열등하고 미숙한 존재로 자리매김했고 남성을 표본으로 삼아 우월하게 만들어졌다. 저자 캐럴 길리건은 하버드대 최초의 여성학 교수로서 그동안 남성 위주의 심리학계를 근본부터 바꿔놓았다는 평을 듣는다. 도덕발달 이론으로 모든 심리학 교과서에 실리는 대가 콜버그의 연구를 정면으로 반박하며 기존 이론이 여성을 발달에 실패한 것으로 해석했다면 길리건은 다르다는 논리를 펼쳐 여성을 포함한 자신만의 도덕 발달 이론을 제시했다. 정신분석이론의 프로이트의 부정적이며 부차적인 여성의 심리묘사를 길리건만의 긍정적이고 직접적인 설명으로 대체했다.

 

다르다는 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 즉 틀린 것이 아니다. 분명 남성과 여성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다른 차이점이 많다. 남성의 시각에서 여성의 특징을 비하하고 이해할 수 없다고 여기는 것은 미숙한 생각이 아닐까? 이를테면 여아들은 남아들처럼 오이디푸스기 전 단계의 관계양식을 부정하는 관점으로 자신을 규정하지 않는다. 관계, 특히 의존의 문제에 대해 여성과 남성은 다른 경험을 한다. 어머니로부터 필수적으로 분리해야 하는 남성은 독립에 있어서 성 정체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지만 여성적 정체성은 어머니로부터의 분리나 개인화 과정에 달려 있지 않으므로 오히려 분리에 위협을 느끼는 것이다. 따라서 남성은 관계 맺는 것에, 여성은 개인화 과정에 어려움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심리학에서 독립의 실패를 발달상의 장애로 인식한 것은 순전히 남성의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성은 타인의 요구에 응답하는 삶을 살아오면서 이기적, 부도덕하다고 평가받을 주장을 하지 않고선 주도권을 행사할 방법이 없었다. 그것은 여러 형태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 책은 무려 40여 년 전의 책이라 지금보다 더 보수적이었던 사회에서 출간되고 어떤 파장을 일으켰을지 상상이 된다. 프로이트를 비롯해 피아제, 콜버그 등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심리학자들이 여성을 배제하며 이론을 완성시켜 나갔다는 사실을 확실히 지적하며 여성과 남성, 양쪽의 목소리를 모두 듣고 관찰한 결과 돌봄의 윤리를 새 기준으로 제시한 것이다. 사회적 여성성으로 억압과 모순, 괴리를 경험한 여성이라면 이 책에서 실마리를 찾기 바란다. 치열히 대항해온 투쟁의 역사와 거대한 연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남성의 경험이 모든 인간의 경험을 대변한다는 이론에 도전장을 내밀었던 캐럴 길리건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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