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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혼자라는 즐거움 - 나의 자발적 비대면 집콕 생활
정재혁 지음 / 파람북 / 2020년 12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0/1211/pimg_7335861902759519.jpg)
때로는 혼자라는 즐거움
활짝 열린 문과 문밖으로 엿보이는 출렁이는 바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나는 좋아한다. 오늘 읽은 책의 표지디자인이 그의 작품이었다. 작가의 인터뷰기사를 읽다가 책 표지에 대한 부연설명이 나왔는데,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제안했던 건 담당 편집장이셨다고 하며 자신의 글과 잘 어울린다고 판단하셨다고 한다. 담당 디자이너가 그림들을 살펴보다가 다른 그림으로 바뀌었고 제작 막판에 저작권과 비용으로 곤욕을 치웠다는 에피소드까지 전해주었다. 그래도 나같은 독자는 그 어려운 과정 끝에 탄생한 이 책이 마음에 들 뿐이다.
요즘 같은 코로나 시대에 이 그림이 위안을 주고 나의 바람을 담고 있기도 하다. 멈추고 바라보면 놓쳤던 것들을 좀 더 자세히 보고 이해할 수 있다. 도태하는 것이 아니다. 나아가지 않지만 멈춤으로 인해 가장 나다운 나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저자는 5년 전 불의의 병원 신세를 지고 난 후 서울의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인천의 본가로 들어가 가족과 살면서 비대면 집콕 생활을 시작했다. 비자발적인 상황이 능동적이며 자발적인 생활로 어떻게 바뀔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혼자가 되어 지냈던 지난 5년간, 그는 늘 움직였다. 자신이 가장 ‘나’ 일 수 있는 자리를 찾으며. 틈을 내 동네 카페를 찾고, 3시간이 넘는 영화를 만반의 준비를 갖춘 뒤 방구석에서 보고, 가장 좋아하는 옷을 때론 동네 슈퍼에 갈 때 걸쳐 입는 등. 그는 드라마 <렌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음’ 으로 다른 이의 무언가가 될 수 있다는 걸 느꼈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드라마는 맛집 번호표 받기부터 꽃놀이 자리 맡기 등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자신’을 빌려준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남을 대신해 실은 아무거나 하고 있는 걸 보면 모순 같기도 하다. 어쨌든 드라마는 주인공 렌탈씨를 통해 가장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자리에서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게 하며 본심을 바라보게 했다. 인간은 웬만해선 무언가를 ‘하려는’ 동물인 듯하다.
좀처럼 가지 않던 길, 지나치고 뒤로 했던 샛길에서 만나는 이러 저러한 것들에 대해 저자는 이야기했다. 빵을 좋아하는 저자는 집에 빵이 떨어진 날, 계단 너머 파리바케트로 향하며 평소와 다른 자신의 템포, 어쩌면 설렘을 느꼈다. 영화 <요코미치 이야기>를 떠올리며. 요코미치 요노스케는 세상 어디든 숨어 있는 샛길을 닮은 한 남자의 인생담이었다. 저자는 자신의 동네를 떠올리며 5년이 지나서야 처음 보는 풍경들을 언급했다. 가끔 이유 없이 빠른 걸음에 동네의 샛길을 놓치곤 했다고. 샛길은 사실 인생에 숨은 가장 가까운 복선인지도 모른다고 말하며.
<씨네21>, <보그>, <긱> 등 오랫동안 다양한 잡지에서 일해온 저자답게 개인적 일상을 담은 에세이도 참 잘 읽혔다. 나를 관찰하는 ‘나’를 보기 시작하며 그 고독마저 기꺼이 즐긴 저자의 모습이 멋지다! 외로움과 고독은 한끗 차이인 것 같다. 난 저자처럼 고독을 즐기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더욱이 요즘 같은 때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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