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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청망청 살아도 우린 행복할 거야 ㅣ 문예단행본 도마뱀 1
박은정 외 지음 / 도마뱀출판사 / 2020년 11월
평점 :
흥청망청 살아도 우린 행복할 거야
돈가스 테이크아웃 가게가 생겨서인지 바로 옆 정육점 아저씨는 돈가스를 찾는 손님을 무척 반가워했다. 돈가스 덩이를 비닐에 담으며 “내 돈가스는 구식이야.” 라고 하는 그. “네?” “아니, 아니. 내 돈가스는 수제 돈가스야.” 라며 말을 이어가는 모습에 작가는 세상엔 귀여운 사람이 어쩜 이리 많은지 생각한다. 대부분의 날들은 피곤했는데 이런 식으로 좀처럼 기운이 나지 않을 때 힘을 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돈을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바뀐 계절의 옷을 32만원 어치 사고 허기를 채우듯 책을 여섯 권, 열권씩 순식간에 사재낀다. 탕진잼. 피부를 쉬게 해주는 마스크 팩, 홈쇼핑에서 파격 세일하는 냉동 만두. 만질 수 있는 단단한 행복들이다. 구매 가능한 행복은 불안을 잘게 찧는다. 소설과 에세이를 쓰는 김나리 작가는 ‘불안을 잘게 찧자, 달콤한 나의 탕진잼’ 이란 제목으로 문예 단행본 도마뱀의 한 곳을 장식했다. 단행본인데 계절별로 시리즈를 선보일 예정이라는 문예단행본 도마뱀. 제목과 같이 주제는 ‘탕진잼’ 이다. 재물 따위를 소소하게 탕진하는 재미를 말하는 신조어를 통해 각계각층 문화예술인의 다채로운 목소리를 한데 모았다. 잘 아는 이병률 작가도 보이고 음악평론가인 김봉현 작가도 보인다. 내가 좋아하는 백영옥 작가도 보인다. 난 미니멀라이프를 추구했지만 백영옥 작가처럼 책에 관해선 맥시멀리스트에 가까웠다. 책뿐 안 아니라 모든 물건에 대해선, 무언가를 산다면 뭔가를 버려야 집안은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 엔트로피의 법칙 같은 걸까? 지난 주말 옷장 속에 있는 옷을 한가득 버렸다. 예쁘지만 살쪄서 못입는거, 유행 지난걸 모두모두 버.렸.다. 그리곤 또 의류쇼핑몰을 들락거리며 옷을 사려는 날 발견한다. 있는 것만 잘 매치해 입자고 버린 건데 이 죄책감을 동반한 탕진의 세계는 쉽게 멈추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미니멀리스트가 간절히 되고 싶은 맥시멀리스트인가?
조수진 작가는 입사 후 세 번째 봄을 맞을 무렵 여유가 생기자 통장에 잔액이 남아있는 걸 못 견디는(?), 입금되는 족족 소비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고백했다. 월급날은 백화점에서 명품 화장품을 사고 미용실에 들러 고급 클리닉 서비스를 받았다고. 과소비에 대한 죄책감도 잠시. 스트레스를 푸는 취미일 뿐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고. 삶이 계속되고 불면증은 심해졌으며 결국 정신과를 찾았고 그 과정을 통해 정답이 아닌, 나를 궁금하게 되었다고 했다. 나를 알아가면 나 자신에게 마음이 간다. 내가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하고. 나도 단답형으로 떨어지지 않는 나 자신에 대해 질문하며 나를 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녀는 보이지 않는 플러그에 작동되도록 자신을 내버려두며 자신이 탕진했던 것은 계좌 잔고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자신이 주체로 살아갈 수 있는 시간과 자유를 탕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퇴사를 결정하고 남들이 배부른 고민이라 치부한 자신의 불행(?)에도 고교 동창 2명은 자신을 단단히 붙잡아줬으며 지지해줬다고 말했다. 17년간의 서울 생활을 뒤로 하고 홀로 제주에 와 직장을 세 차례 옮기며 경력 탕진잼을 만끽하고 있단다. 월급은 반으로 줄었으나 잔고는 오히려 (아주 약간) 늘었다고. 쇼핑으로 욕망을 채워 넣을 필요가 없어졌기에 가능하다. 작가는 말했다. 내가 나로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고 안전하다고. 그러기 위해 내게 질문을 던지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이다.
책은 따로 또 같이, 때로 겹치고 어긋나는 말들의 어울림을 담았다. 시인, 소설가, 음악인, 사진작가, 편집자 등 다양한 이들이 함께 하며 탕진잼에 관한 여러 느낌을 이야기했다. 문예단행본 도마뱀 시리즈는 시의적절한 주제를 고민하며 다채로운 목소리를 모으는 데 목적이 있으니 다음 주제와 작가들의 생각도 기대해본다. 말광량이 삐삐를 연상시키는 자유로운 표정의 표지 인물에 다시 한 번 눈길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