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인생 수업 - 보름달이 건너가도록 밤은 깊었다
김정한 지음 / 미래북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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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인생 수업

 

오늘따라 커피가 입안을 텁텁하게 하는 것 같아 이내 물을 들이켰다. 두근두근, 심장이 뛰는 건 카페인 때문인가? 요즘 들어 잠이 안 오는 불면증을 커피 탓으로 돌리기엔 내 안에 고민이 적지 않은 것 같다. 머릿 속을 휘젓는 생각들은 고상하게 사색으로 변모한다. 멍 때리는 것 또한 필요한 것이라 여겨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지만 주로 난 상상과 공상을 오간다. 날씨 또한 나의 그것을 촉진시킨다. 늦가을이다. 겨울의 문턱에 성큼 다가섰다. 오늘 읽은 책 <길 위의 인생 수업>은 시인 김정한님의 산문집이다. 시인과 에세이스트의 경계를 넘나들며 온전한 작가로 살고 있다는 책날개의 소개가 반갑다. 난 이런 류의 글을 좋아한다. 마주앉거나 혹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걸으면서 이야기하는 기분이다. <11, 낮아지면서 서서히 사라져가는> 이란 제목의 글이 눈에 띄었다. 지금이 11월의 막바지다. 서리는 11월의 꽃이다. 나무들은 잎을 떨어뜨리고 털어내고 비우기 시작한다. 봄을 위해, 겨울을 견디기 위해 다 털어내고 점점 더 가벼워진다. 반면 사람은 외투를 꺼내 입고 단단히 무장한다. 비장하다. 책에 소개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말대로 싱그러운 잎사귀들이 자신의 무덤으로 가는 모습은 거룩하다. 단풍이 나부끼며 흩어지는 모습을 항거하다 벌겋게 익은 고민피 묻은 집착이라고 한 표현도 마음에 든다!

 

시인의 언어는 일상의 소재에서도 그것을 선명하게 관찰해내며 개성 있게 표현한다. 추락하기 직전의 선명한 빛깔인 낙엽이 찬란한 것도 시인이 그렇게 명명하기 때문이리라. 길지 않은 하나의 글에서도 작가의 목소리가 느껴지면서 필사를 하고 싶을 만큼 아름답게 다가왔다. 사랑은 아름다운 손님이란 생각도 무릎을 탁 쳤다. 손님은 머무르다 가는 존재다. 언제 찾아와 언제 떠날지 모르는. 그래서 자로 재듯 정확한 날짜에 찾아오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 곁에 있을 때 살포시 내 마음에 내려앉아 자유롭게 있다 가는 아름다운 손님. 그것이 사랑이라니 나도 동의한다. 사랑은 소유할 수 없는 것이기에 손님같다.

 

책은 사랑에 대한 열병과 생의 절박함을 약간은 고독하게 꼼꼼히 직조한 간절한 외침이라고 말했다. 김정한 작가의 글들을 읽고 있으니 이러한 외침과 흐느낌이 느껴져 아련하다. 부제 보름달이 건너가도록 밤은 깊었다의 글에선 자신이 빛의 화려함과 색의 유희에 끌리며 세상의 모든 소리와 색을 흉내냈었다고 고백한다. 살면서 너무 많은 소리를 내려고 애썼다면서. 나를 울리는 소리를 내자고 다짐했다. 가볍고 단순하고 선명한, 행간을 두드리는 온전한 소리. 나도 나답게 살고 싶다. 종로 경찰서 앞 우체통에 대해 쓰면서 붉은 색깔이 보여주는 그리움의 간절함을, 나도 직접 눈으로 확인해볼 요량이다. 오늘의 행선지는 안국역 앞에 있는 종로 경찰서 앞 우체통. 간 김에 근방 감고당길에서 가을의 끝자락을 느끼고 돌아올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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