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울에게 - 아프지만 잊고 싶지 않아서 쓴 우울한 날들의 기록
김현지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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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우울에게

 

나는 깊은 지하에서만 돌고 도는 지하철이었다.’ 라는 문장으로 자신을 표현한 저자. 지하 깊숙이 있는 7호선을 타고 매일 출근하는 난 이 문구가 와 닿았다. 어둡고 깊은 동굴 또는 심해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 이 표현 속 공간이 주는 느낌은 나에게 출근의 따분함과 괴로움을 나타낸다면 저자에겐 우울 그 자체였다. 그녀가 중년 남성들에게 과도한 친절을 베풀고 환하게 웃으려 애쓰는 건 순전히 어린 시절 아빠의 행동으로 인한 트라우마의 결과였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거북한 상냥함이 몸에 배어버렸다. 아빠는 훈육이라고 했지만 체벌이 아닌, 화풀이를 위한 폭력을 자주 행사했다. 대개 사람들은 사랑과 학대는 공존할 수 없다고들 생각하는데, 세상엔 폭력과 학대를 사랑과 애정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저자는 사랑받은 것 이상으로 외면당하고 짓밟혔다고 고백했다.

 

저자가 가지게 된 우울은 다른 감정들을 쉽게 집어삼켰다. 긍정적인 감정들은 찰나에 그치고 금방 자취를 감췄다. 무기력함이 계속 되었고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으면 살이 쪘다. 쌓이는 응어리를 울음으로 진정시키곤 했지만 그것이 풀리는 건 아니었다. 언젠가 불쑥 그 응어리가 터져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삶이 위태롭고 안타깝게 느껴졌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들을 보며 수많은 선택지들이 소모되거나 망가져 버려서 하나의 선택지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말에 심장이 덜컥거렸다. 그녀는 극단적인 선택이라고 표현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벼랑 끝에 몰린 유일한 선택지였을 것이므로.

 

비공개 블로그에 답답하고 화나는 기분이 들 때면 그 생각을 마구 쏟아내며 후련해하기도 하고 고슴도치를 반려동물로 키우며 나름의 자신을 대하는 방법을 터득해나가고 있었다. 내용 중에 소중한 사람이 우울증을 앓는다면이란 내용이 꽤 도움이 되었다. 그들에게 어떻게 대해주면 좋을지 당사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해주었다. 상대의 상태가 나아지지 않더라도 자책하지 말 것, 재촉하지 말 것, 특별한 언질이 없다면 우울증인걸 알기 전처럼 대해줄 것, 조언보단 공감과 경청을 할 것 등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받아주고 들어주는 것에 지쳤다면 솔직히 얘기하고 무리하지 말라고 했다. 건강한 관계를 위해 속앓이하지 말 것을 당부했는데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녀는 힘들었던 그때의 나에게 모진 말을 내뱉지 말고 삶은 생각보다 기니까 쉬어가는 걸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불행은 나의 종착역이 아니니까. 자신을 보듬는 모습에 응원을 담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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