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파래서 흰색을 골랐습니다 - 나라 소년형무소 시집
료 미치코 엮음, 박진희 옮김 / 호메로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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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파래서 흰색을 골랐습니다

 

제목이 아름답고 산뜻했다. 예쁜 시집일거라 생각했다. 표지도 파란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보인다. 그런데 벽돌 건물이 하나 보인다. 일본의 소년형무소인 나라 소년 형무소. 작가 료 미치코님은 형무소에서 만난 소년 수형자들과 함께 지은 57편의 시를 이 책에 실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동시나 어른들의 현학적이거나 이해하기 조금 어려운 시집과는 느낌이 달랐다. 아무래도 라는 매개체를 통해 그 속에 있는 아이들의 마음이 오롯이 느껴졌기 때문일까. 잘 쓰고 못 쓰고는 문제되지 않았다. 저자의 말마따나 그저 시라고 생각하고 쓴 단어가 그곳에 존재하고 그것을 모두가 공유하는 자리를 가졌을 뿐인데 그것은 진짜 시가 되어 깊은 교류가 일어난 것이었다.

 

예전에 아빠가 교도관으로 근무하실 때 수감자와 편지를 나눴다는 얘길 들었다. 범죄자라는 꼬리표 때문에 그들에게 편견을 가진 대부분의 사람과는 달리 인간 대 인간으로 교감을 주고받은 모습이 보기 좋았었다. 이 책에 실린 시를 지은 나라 소년 형무소의 아이들도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라 하더라도 처음엔 마음에 상처 하나 없는 갓난아이였으리라. 커가면서 상처를 받고 그것이 비행으로 치달아 범죄자가 된 것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아이다움을 꾸밈없이 표현하고 그래도 괜찮다고 안심시켜준 멋진 어른이었다. 글로 마음을 표현하는 건 치유의 효과가 꽤 탁월한 것 같다. 특히 시는 단 한 줄의 문장이라 할지라도 가능하다. 오늘 읽은 책 제목과 같은 한 줄의 시가 그랬다. A군이 쓴 이 시는 하늘을 보면 어머니와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며 엉엉 울었다. 자신의 시가 모두에게 닿아 마음을 흔들어 놓은 것을 느낀 A군은 지금껏 볼 수 없었던 밝은 표정을 지었다고 회상했다. 제목은 구름이었다.

 

책 중간 중간 나라 소년 형무소의 사진이 삽입되어 있어 읽는 동안 아이들과 함께 있는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되어야 한다. 그의 입장이 되어 느끼고 생각해야 된다는 말이 오늘따라 더욱 실감났다. 죄를 저지른 아이를, 가족은 어떻게 대해야 할지 대부분 모른다. 그래서 나라 소년 형무소에선 보호자회를 실시하고 있단다. 교관이 가족들에게 상담과 지도로 돕고 속내를 꺼내지 못하는 수형자와 가족 간의 다리가 되어 주기도 한다. <죄송해요>란 제목의 시에선 당신을 배신하고 그렇게 울게 했는데 당신은 나에게 사과했다 아크릴 판 너머로 미안해, 하고 나쁜 건 바로 나인데 그날의 눈물진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죄송해요 엄마라는 내용의 솔직한 심경이 담겨있어 나 또한 눈물이 나왔다. 같은 엄마로서 그 모습을 상상해보니 자식의 수감된 모습에 얼마나 마음이 미어졌을까. 아이의 반성하는 마음이 시에 솔직하게 담겨있어 군더더기 없이 잘 읽혔다. 시는 미사여구가 들어있지 않아도 진실하게만 쓴다면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것 같다.

 

작가가 형무소 창작교실을 통해 아이들을 교화하고, 당연한 감정을 당연하게 표현하는 것을 받아주고, 이럼으로써 이들이 갱생할 발걸음을 인도하는 모습에 존경을 보낸다. 순수한 보석 같은 언어에 마음이 맑아진다. 이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날 다시는 이 담 안으로 돌아오지 않기를 함께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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