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안 하는 녀석들 문지아이들 163
김려령 지음, 최민호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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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안하는 녀석들

 

내가 살던 친정집은 도농복합도시였다. 이곳에 아파트를 짓고 이사와 살게 되었지만 주변은 논과 밭, 비닐하우스가 여전히 많았다. 한번은 가까이 보이는 큰 옆 동네 산까지 걸어가려다가 생각보다 먼 거리임을 실감하고 비닐하우스 꽃집이 즐비한 도로에서 걸음을 돌렸던 기억인 난다. 이 책의 양지화원이 그랬다. 내가 본 그 꽃집 비닐하우스와 닮아있었다. 도로변 허허벌판에 문 닫은 꽃집 다섯 채가 쪼르르 있는 사진을 보니 그 때 생각이 났다.

 

주인공인 초등학생 현성이가 화자로 등장해 이 동화를 이끌어나간다. 현성이가 작년 겨울 이 비닐하우스로 이사를 왔다. 다 삼촌 때문이었다. 삼촌의 사기로 현성이네는 서울의 아파트 전세금을 빼서 삼촌에게 주고 이 꽃집으로 이사했다. 보상금으로 건너편 아파트를 사서 이사 갈 계획이었으니 당장 불편한 것들은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모두 사기였다. 철거 전엔 나가야 하는데 꾸역꾸역 붙어있으면서 날이 풀릴 때까지 기다렸다. 엄마 아빠가 시에 사정하다가 싸우다가 배짱부리다가 사과하는 것을 반복하는 모습을 현성이는 보았다. 그래도 현성이 엄마는 꽤 낙천적인 성격으로 보였다. 수제비도 해먹고 일도 다니면서 현성이에게 감정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캐릭터는 전혀 아니었다. 엄마의 건강한 마음이 엿보여서 바람직했다.

 

현성이가 엄마의 심부름으로 마트에 밀가루를 사러 갔다가 반 친구 장우를 만나고 그와 친해지면서 서로의 집도 오가는 사이가 되었다. 둘은 호기심 많은 남학생답게 현성이네 주변 비닐하우스를 탐색할 계획을 세웠다. 장우네 집에 있는 여러 잡동사니를 챙기면서 말이다. 장우라는 친구도 꽤 솔직하고 털털했다. 장우 부모님은 이혼했고 각자 새가정을 꾸린 상태였다. 뭔가 복잡한 관계를 매우 쉽게 말하는 모습이 신선했다. 현성이의 속마음이 와닿았다. ‘도대체 집집마다 뭐가 이렇게 복잡한 것일까. 우리 집은 무슨 사기로 복잡한데, 장우네는 부모님들이 복잡했다.’

 

장우네서 놀다 시간이 너무 늦어 집에 돌아온 현성이는 부모님의 싸움을 목격한다. 삼촌한테 사기 당했다고 했을 땐, 그땐 우리가 엄청나게 가난해진 순간이었는데 충격이 너무 커 다들 멍해져 싸우지도 못했던 걸 이제 와 하는 것 같았다. 쉬지 않고 달릴 때보다 더 가슴이 답답했다는 표현에 공감이 갔다. 나도 어릴 적 부모님이 부부싸움을 하면 심장이 쿵쾅거리고 답답했었다. 현성이 아빠가 다툰 뒤 집을 나가버리고, 엄마는 식당에 취직해 디저트 전문 요리사임에도 그것만 빼고 다 만드는 현실에 마음이 아팠다.

 

현성이와 장우가 방학이 되면 가보려던 비닐하우스에서 서로 우연히 만나 깜짝 놀라는 장면이 나온다. 장우는 새엄마가 완전히 집에 와 불편해서 이곳에 온지 며칠 되었다고 얘기했다. 현성이는 아빠가 집을 나갔는데 장우는 엄마가 집으로 왔다.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현성이네는 집이 없어 갈 데가 없었고, 장우네는 집이 많아 왔다갔다 하며 하는 상반된 모습이 더욱 극적으로 다가왔다.

 

둘은 장우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올릴 영상을 찍었다. 구독자가 19명뿐인 허접한 채널이었지만 그들이 올린, 아무것도 안하고 1시간동안 앉아있는 동영상은 조회 수 천을 넘겨버렸다! 바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아무것도 안하는 녀석들>이 무슨 뜻인지 이해되는 대목이었다.

 

현성이에게 집은 힘들다기보다 속상한 집이었다. 이젠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시에선 철거를 위해 전기와 수도도 끊어버렸다. 찜질방에서 엄마와 보내다가 현성이는 아빠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 “아빠, 우리 내일 이사 가.” 엄마가 구한 어느 주택가 3층짜리 건물 지하에 있는 집이었다. “꼭 갈게, 기다려라고 답장을 한 아빠의 글을 끝으로 2/3 분량의 가제본이 끝났다. 현성이네 가족이 어떻게 될지 너무 궁금하다. 어서 뒷부분의 내용을 읽고 싶다.

 

현성이와 장우의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이 현실에서 느낀 감정과 성숙해져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김려령 작가의 이번 도서도 영상으로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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