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백 마리
정선엽 지음 / 시옷이응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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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백 마리

 

얼마 전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 스마트소설 공모전에 응모를 해봤다. 짧지만 깊고 넓은 이야기! 삶의 희로애락 그 중 어느 단면을 한컷 불꽃 사진처럼 그리는 스마트소설이란 장르는 내게 생소했다. 주제를 주었고 원고분량은 200자 원고지 10매 내외였다. 매우 짧은 초단편소설이라 할 수 있었다. 결과는 떨어졌지만 이 기회에 난 이렇게 짧은 순수창작물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관심이 생겼다. 그러던 찰나 서평도서로 정선엽 작가의 <양 백 마리>를 읽게 되었다. 29편의 짤막한 이야기가 실린 손바닥만 한 크기의 책자였다. 총 페이지가 200쪽이 안되니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다. 저자는 당선이나 수상과는 상관없이 소설을 쓴다고 했다. 긴 글을 쓰는 걸 좋아하지만 요즘엔 짧은 소설들에도 재미를 느끼게 되어 무심코 손을 대보았던 게 계기가 되었다고 소개했다. 여느 소설가처럼 철저한 자료조사와 구성을 하는 대신 일단 떠오르는 대로 쓰는 걸 좋아하고 구성대신 구상을 한다고 말했다. 밖에서 찾기보단 안에서 쓸 것을 찾는, 자신이 쓰고 싶은 소설을 추구하는 작가였다.

 

이 책에 실린 초단편소설들 중 책 제목으로 대표되는 작품이 8번째 실려 있었다. 예상하건대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가 나열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이 두 페이지에 걸쳐 100마리까지 세고 있을 줄은 몰랐다! 내용도 야릇한 느낌이 드는 상황이다. 화장실에서 도로 침실로 들어가 깜깜한 세상을 마주하곤 녀석의 면상을 보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는 문장에 피식 웃음이 났다. 이 외에도 <내 성기는 너무 무겁다>란 글에서 다룬 성인용품 딜도라든지, <축하합니다>란 제목의 홍상수 감독의 수상이야기를 다룬 글들이 인상 깊었다. 짧은 시간 그 상황을 아주 주도면밀하게 관찰한 듯 한 느낌이 들어 집중하기 쉬웠다. 초단편소설은 이렇게 쓰는 거구나! 란 생각에 무릎을 탁! 쳤다.

 

신선했고, 빠르게 소비되는 글들 속에서 은근히 여운에 남는 소설집이었다. 정선엽 작가의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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