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음이 아픈 의사입니다 - 견디는 힘에 관하여 정신과 의사가 깨달은 것들
조안나 캐넌 지음, 이은선 옮김 / 라이프앤페이지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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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음이 아픈 의사입니다

 

메디컬이라 쓰고 라이프라 읽는,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악역도 없고 막장 전개도 없지만, 오로지 사람 사는 따뜻한 이야기로 인기를 얻었다. 대학병원 다섯 의사들의 삶과 우정이야기를 그린 이것은 최고 시청률을 갱신했었다. 내용 중에서 아이를 두 차례 유산한 적이 있고 세 번째 임신인 산모를 진료하는 의사 석형의 진료 장면은 꽤나 인상 깊었다. 무심한 듯 냉정하게 진료를 이어가는 듯 보였다. 내내 훌쩍이는 산모는 유산에 대해 선생님께 이런 병은 병도 아니죠?” 라고 서운한 듯 질문했었고 석형은 유산이 왜 병이에요? 유산은 질병이 아니에요. 당연히 산모님도 잘못한 거 없고요. (중략)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일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동안 많은 여성들이 자신이 잘못해 벌어진 일이라 자책하고 스스로 고통 받았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저려왔다. 그런 점에서 석형의 말은 많은 여성들의 위로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병원에 방문한 사람들은 의사를 대할 때 심리적으로 많은 의지를 할 것 같다. 하지만 의사 또한 인간인지라 육체적, 정신적 피로에 힘들기도 하고 책임과 불안에 허덕이는 존재이리라. 의사의 생활을 다룬 에세이는 쉽게 접하지 못했던 터라 이 책이 더욱 신선하고도 새롭게 다가왔다. 저자는 정신과 전문의인 조안나 캐넌이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았다. 마음이 아픈 의사라니. 그녀는 의과대학에 입학하고, 수련의 과정을 거쳐 정신과 전문의가 되기까지 겪었던 경험들을 이 책에서 보여주었다. 어느 직업군보다 심리적인 고통이 환자 못지않게 심할 것 같다. 그 이유는 생과 사의 현장 일선에 있고 죽음까지 목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의사로 성장하며 이런 트라우마를 겪지 않는 의사는 없겠지...라는 생각을 해보면서도 환자만 돌보고 정작 자신의 상처받은 마음은 돌볼 여유가 없는 이들이 안쓰럽다. 환자에게 자신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건 전문적이지 않기 때문에 더욱 아픈 것 같다.

 

책은 와일드카드로 의대에 진학한 그때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30대에 들어서 뒤늦게 의사의 길로 들어선 자신을 와일드카드로 부르고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각양각색의 사람들은 다양했다. 의사를 수없이 배출한 집안부터 온 집안을 통틀어 처음 의대에 진학한 경우, 지구 반대편에서 온 경우, 자신처럼 일견 상관없어 보이지만 때가 되면 묘하게 가치를 입증할 직업을 거쳐 의학에 관심이 생긴 경우 등. 정신과 의사는 작가와 공통점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이야기를 사랑한다는 것이라 대답할 수 있겠다. 의술의 중심 또한 인간이고 인간은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으니.

 

그녀는 수련의 시절 비뇨기과를 맡았다. 방광과 고환과 요관의 황홀한 조합이라고 표현해 피식 웃음이 났다. 응급실에서 호출을 받을 땐 어느 환자를 먼저 살펴야 하는지 경험이 쌓이며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고 했다. 전문의가 수련의를 괴롭히는 것도 목격했다. 회진을 도는 동안 일부러 멍청한 상황을 만들어 환자와 간호사들 앞에 창피를 주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존중받아 마땅한 존재인데. 서글프다. 살인적인 근무시간과 비인간적인 병원체계도 고발했다. 의료시스템의 부조리는 말할 것도 없었다. 저자는 견디기 힘든 압박감을 이겨내고 정신과 의사로 성장해갔다. 인간에 대한 공감과 연민이 없으면 힘든 일이었다. 환자와의 교감을 통해 용기를 잃지 않는 모습을 목격하고 깊은 통찰과 힘을 얻었다.

 

의사라는 직업이 겉은 화려해보여도 생각보다 어려운 직업이란 생각이 더욱 많이 들었다. 오롯이 묵묵하게 걸어가고 있는 수많은 의사들에게 존경을 표한다. 의사로서 따뜻한 위로를 받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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