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당신의 작은 공항
안바다 지음 / 푸른숲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와 당신의 작은 공항

 

공항이라는 두 글자만 보아도 설렌다. 가장 마지막에 공항에 갔던 건 신혼여행을 떠나기 위해서였다. 난 수많은 인파 속에 하나로 그 분주하고 들떠있으며 생기 있거나 또는 피곤해 보이는, 모습들 모두가 좋았다. 비행기에 탑승하면 또 다른 느낌이었지만, 어쨌든 공항은 여행지를 떠나기 전의 기대감을 집약시켜놓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쉽게 갈 수 없는 곳이다.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그렇다. 그래서 이 책의 작가처럼 집을 여행하기로 했다!

 

결혼하고 친정의 내 방은 아빠의 서재가 되었다. 제일 작은 방이었는데 처음엔 내 옷가지와 책들이 빠져나간, 휑한 공간이 되었지만 이내 그곳은 은퇴 후 아버지만의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지금도 가보면 약간의 내 흔적들과 함께 아버지의 냄새가 자리 잡았다. 시집와서는 시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었다. 아직도 분가 전이지만 몇 년을 살아도 이 공간은 제법 낯설다. 화장실과 거실, 신랑의 방이었던 두 번째 크기의 방....책을 읽으며 이곳을 아직도 내가 제대로 가본 적 없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만의 공간이 따로 없는 게 흠이다. 적어도 물리적으론 그렇다. 아이가 자고 난 한밤중의 시간이, 유일하게 내가 자유롭게 사유하고 혼자만의 느낌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이다. 이렇든 저렇든 현관부터 시작해 집안에 놓인 물건들, 가구들을 자세히 관찰해보았다. 저자는 현관에서 아내가 머뭇거리며 나가지 못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했다. 심하게 다툰 부부는 그 결과 거실 소파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작가, 돌아보지도 않고 짐을 싸 현관으로 향하는 아내로 귀결되었다 .하지만 현관, 그 작은 공간이 그녀를 가두기라도 한 것처럼 아내는 그렇게 서있었다. 그렇게 서 있는 게 가능한 유예의 공간. 아무런 결정을 하지 못해도 용인되는 공간 덕분에 작가는 뛰어가 아내를 잡을 수 있었다. 단호함만 통용되는 공간이었더라면 어땠을지. 끔찍하다.

 

작가는 어린 시절의 주방으로 공간을 소환한다. 다이나믹 듀오의 어머니의 된장국이란 노래가사를 보면 삶처럼 밥에 퍽퍽해 물 말아 먹는, 어머니의 된장국 담백하고 맛있는 그 음식이 그리워 그 때 그 식탁으로 돌아가고픈, 잠깐의 생각만으로도 배고픈이란 가사가 나온다. 내가 좋아하는 힐링곡 중 하나인데, 주방에서 파를 썰며 엄마의 아침 준비하는 모습이 상상되어 그립다. 주방은 그런 곳이다. 엄마는 맛있게 먹는 사람을 보는 즐거움 때문에, 그리고 음식을 먹는 이가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 번거로운 일을 한다고, 말했다. 책은 집과 그 공간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소설을 소개하며 명화를 삽입했다. 단순한 에세이를 넘어서 인문학 도서 같은 지적 즐거움을 선사했다. 역시 책날개에 소개된 대로 브런치북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작가님답다. 문학 외에도 미술, 음악, 사진, 영화 등 예술장르와 글쓰기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문장이 줄 수 있는 즐거움과 가치에 대해 고민하며 다양한 내용과 형식의 글쓰기를 시도하고 있다고 한다. 읽는 동안 공항같이 즐겁게 탐색할 수 있는, 추억을 소환할 수 있는 집에 대해 생각해보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오늘부터 연극의 주인공만 비추는 하나의 핀 조명처럼 그 빛 안에 들어가 삶의 주인공답게 소중한 일상을 일궈나가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