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끈질긴 서퍼 - 40대 회사원 킵 고잉 다이어리
김현지 지음 / 여름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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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끈질긴 서퍼

 

40대의 일기를 읽었다. 나이를 나누는 건 의미 없지만 나에게도 곧 다가올 시기라 혹시 뭔가 다른 게 있나 궁금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상관없이 같았다, 아니 비슷했다. 거의. 일기는 자신의 모든 것을 긍정할 수 있어 좋다. 스스로에게 귀를 기울여주고 점점 소멸해가는 시간을 기록으로 붙잡아둘 수 있다. 저자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평범한 회사생활을 하고 있고 비스무레하게 보드에 매달린 서퍼다. 회사가 파도고 회사원이 파도타기라면 끈질기게 보드에 매달려있는 서퍼. 때로 그 파도의 종류를 갈아치우고 싶다는 충동이 들 때도 있지만 그것은 꽤나 어려운 일에 속했고 그저 떠밀리지 않게 중심을 잡고 온 몸에 힘을 주며 보드 위에 올라가 버티고 있는 중이다.

 

저자의 365일의 기록은 매일 똑같거나 비슷한 하루를 성실하게 견딘 결과물이다. 평범한 것이 가장 위대하다. 평범한 것이 기적이다. 너무 뻔한 일상에 무기력해지거나 무덤덤해질 무렵이었다. 이 책을 읽으니 문장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가 와 닿아서 아껴 읽고 싶었다. 좋아하는 음식을 숨겨놓고 몰래 하나씩 꺼내먹는 심정으로. 그렇게 내 마음을 무장해제시킨 이 책은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방법으로 이렇게 일기를 썼다. 글은 치유이며 위로다. 그것도 자신의 이야기를 가장 사적으로 은밀하게 쓸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흘려버릴 수도 있었던 사건들을 고스란히 남기고 생각을 붙여 인생의 근육으로 만들었다. 그 근육은 나를 지탱해주며 세워주었다.

 

저자는 126일의 일기에 <괄호열고 괄호닫고>란 제목을 달았다. 내용은 이렇다. 매일 일기 쓰기는 무서운 것이고 하루만 밀려도 다음날 2배가 되는 신종 일수 빚같은 것이라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왜 매일 일기 쓰기를 시작해 사서 이 고생을 하는가. 란 자문을 한다. 원래 진짜 재밌는 건 ‘100% 재밌는게 아니다. 진짜는 괄호열고 눈물 닦고 괄호닫고 재미있는 것이다. 배가 고프지 않다면 토스트가 그렇게까지 맛있진 않지 않냐며, 배가 고플 시간, 즉 눈물닦고 괄호닦는. 그 시간을 그리워하게 될 거란다. 이 문장에서 박민규의 <그렇습니다 기린입니다>란 책의 문체가 생각났다. 거기선 유치원에서나 부르던 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이란 동요를 차용해 작가의 유희적 태도를 드러냈는데, 저자의 괄호얘기 또한 그리 들렸다.

 

103일자 일기 <월급루팡>에선 이런 얘기가 나온다. 어떤 사람이 내 기준으로 해서는 안 될 일을 해 당황했다고. 그 얘길 다른 이에게 했더니 뭐 그냥 세상 편하게 사는 사람이네라고 반응해 또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는 내용. 나도 직장인이 되어 보니 학교보다 넓은 사회에서 만난 더 많은 사람들은 모두 나의 기준에 맞출 수 없었고 내가 참 좁고 고지식한 인간이라는걸 느끼게 해주었다.

 

일상에서 겪은 에피소드, 읽은 책과 본 영화들에 대해서도 써주어 좋았다. 저자가 여자분이라 그런지 많은 면에서 동감되는 부분이 있었다. 취향도 비슷했고. 이 책은 가볍게 읽으려했는데 그렇게 읽고만 넘기기엔 내게 너무 많은 위로를 주었다. 소중하게 소장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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